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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Nov 14. 2022

그러려니: 우리의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사이'가 있다. 그 '사이'의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다. 상황에 따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거리와 크기는 역동적으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양상은 보편적인 측면도 있지만 꽤 개인차가 큰 편이다. 친구나 가족 간의 친밀도, 사회성 등을 가늠하기 위해 소시오그램을 그려 보며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사이'와 '거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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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사이'라는 관계망에 오랜 시간 있던 것은 아니지만 한 순간에 '훅' 하고 거리를 좁혀 관계의 중심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 사람의 진입과 엄청난 크기의 존재감으로 인해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원의 바깥으로 튕겨 나가기도 한다. 나의 경우엔 아이의 탄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인간관계망은 몇 차례 엄청난 파도를 맞이하며 출렁거렸다. 그물을 붙잡고 있을 여유조차도 없이 그저 파도를 맞아 출렁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기 바빴던 시간들이었다. 출렁거림이 멈추고 고요가 찾아와 다시 정신을 차리고 그물을 펼쳐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물 밖으로 나가 있었다. 


허전해진 그물을 보며 서운함은 없었다. 그물 안의 사람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품을 수 있는 관계의 규모였고 덕분에 '나'를 더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 정도 그물이면 체력도 열정도 조금은 사그라진 내가 충분히 어깨에 지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과의 '사이'의 거리가 일정 수준보다 멀어지면 '사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운 '알던 사람'이 되기도 한다. 직장에서 일로 만난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좋은 '사이'로 있다가 근무지를 옮기면 자연스럽게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면 멀어진다. '알던 사람'이 되어 몇 년을 지내다가 다시 일로 만나게 되는 경우 다시 좋은 사이로 거리감을 좁히며 다가온다. 이런 관계는 삶에 있어서 굉장히 큰 기쁨을 준다. 이 사람과 일을 하는 동안 다시 즐거울 수 있다는 기대감은 경력이 쌓여갈수록 일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일을 계속하는 이유가 된다.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나 연인이 되는 것보다 '좋은 동료'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요즘은 '친구'가 아니라 '동료' 사이를 넓혀가는 중이다. SNS로 소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동료라고 생각한다. 브런치의 글쓰기도 좋은 동료 되기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적당한 거리감으로 편안하게 소통하고 서로에게 좋은 피드백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동료들이다. 좋은 동료가 되기 위해 좋은 생각을 많이 하려고 하고 좋은 이야기를 나눌 준비를 하기 위해 책도 찾아 읽고 생각에 몰두를 해보기도 한다. 



마흔에 접어들면서 나의 삶의 파이가 커져갈수록 가까운 친구와의 '사이'를 온전히 유지하는 일이 버거울 때가 있다. 이상하게 친구들에게 점점 더 연락이 뜸해진다.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하는 그 친구의 삶의 파이를 이해하기 때문에 나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우리 '사이'를 여전히 '친구'로 규정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그 사이를 '알던 사람'의 상자로 담을 수 없는 과거의 시간들이 닻이 되어 그 자리에 붙잡아 두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역동적인 관계의 파도 속에서도 우리의 사이는 여전히 '친구'로 박제되어 있다. 


예전에 맺었던 친구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친구의 생일을 챙기지도 않으며, 기념일을 함께 축하하지도 않는다. 새해의 인사도 드문드문 끊어지고, 코로나로 인해 연말마다 한 번씩 모였던 모임조차 명맥이 끊겼다. 


그래도 이 글을 쓰는 동안 오랜만에 '친구'라는 낱말을 꺼내어 놓으며 반가운 얼굴과 이름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리고 단단한 닻이 되어 마음 깊숙이 저장되어 있던 그날들의 추억이 생각난다.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지금 당장 전화를 걸어 다정한 안부를 묻지는 못하지만 모두의 안녕을 빈다.


"잘 지내니?" 

"잘 지내겠지."



https://youtu.be/353mbO015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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