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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꽃 바람 Nov 18. 2022

눈물의 의미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어떤 문장이나 생각이 그냥 흘러나올 때가 있다. 


위화의 <인생>에 대해 내가 쓴 글을 읽고 책을 읽어보셨다는 분이 새벽에 책을 읽으며 오열을 했다고 하셨다. 그분이 쓰신 글에 댓글을 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의 의미에 대한 문장이 내 손 끝에서 흘러나왔다. 한 번도 떠올려 보지 않았고 내뱉어 보지 않았던 문장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나도 그 장면에서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도 피가 돌던 따뜻했던 아들이 순식간에 시체가 되어 품에 안겼을 때 믿을 수 없어 오히려 담담했던 푸구이의 마음이 어떨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 그 죽음의 책임을 묻고자 주먹을 불끈 쥐고 온 힘을 다해 싸울 준비를 하였지만 그 죽음의 원인이 자신의 오랫 벗임을 알게 되고 맥없이 주먹에 쥔 힘을 풀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으로도 마음이 답답해져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흘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이라도 흘리지 않으면 내 몸을 가득 채운 무언가 때문에 내가 스스로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해서는 안될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 내뱉어서는 안 될 말을 삼키기 위해서 눈물이라도 흘려야 한다.


요즘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에서 자꾸 눈물이 맺힌다. 눈물이 맺혔다가 눈물을 인식하는 순간 멈추기도 하고, 어떤 눈물을 인식할 새도 없이 그냥 마구 흘러내리기도 했다. 


[코다]를 보다가도 루비가 수화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아니라, 버클리로 떠나는 차 안에서 가족들을 향해 '사랑'의 시그널을 보내는 장면이 아니라, 엄마의 무릎에 누워 있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나에게는 없는, 한 때는 분명 나에게도 있었던 다정한 그 무릎의 감촉이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상실과 부재가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왔다.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그날의 그 무릎의 감촉이, 그 무릎에 누웠던 그 날 보다 더 강하고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 부재가 갑자기 너무 크게 느껴져서 눈물이 났다. 


"나는 왜 우는가?" , "나는 어떤 순간에 눈물을 흘리는가?"라는 물음은 "나는 왜 사는가?" , "나는 어떤 순간에 살아있다고 느끼는가?"라는 물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이나 기쁨, 분노나 희망, 결의나 절망이 너무 커져서 감당할 수 없을 때.

그래서 그 크기를 표현할 언어나 행동이 없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들이 쏟아져 내린 자리에 문학과 예술, 삶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https://youtu.be/SgKvP0O0ny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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