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하기, 초록이 지치기 전에.

지금 여기, 라이브 단상

by 연꽃 바람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중략)
초록이 지쳐 단풍 든다네

서정주 <푸르른 날> 중에서


그리운 사람을 그냥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기로 마음먹고 그리워하는 듯한 결연함이 느껴집니다. 이렇게 맑고 푸르른 하늘 아래 초록이 푸르를 때는 헛짓하지 말고 그 격에 어울리게 그리워하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에 몰두하자는 화자의 선언처럼 말입니다.


이제 곧 저 푸르름도 지쳐서 단풍이 들겠지요. 단풍이 들고 나면 잎은 지고 소멸의 시간이 다가옵니다.


그리움은 삶의 이유이고 에너지이며 끊임없이 청춘을 갈구하는 몸짓인 것 같습니다. 우리의 그리움은 모두 과거에 있고 알지 못하는 것을 그리워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나의 해방 일지>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알게 된 것에서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다는 태훈의 말에 미정은 '그게 (해방의) 전부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리움이 삶을 계속 이어가는 에너지의 전부인 것 같습니다.


날이 너무 좋아서

저의 푸르른 오늘이 너무 좋아서

마음껏 그리운 것을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런 날엔 헛짓하지 말고

고요히 나를 들여다보며 숨어있는 그리움,

나의 삶을 이끌어주었던 과거의 정수,

계속해서 나의 삶에 남겨두고 그리워할 삶의 건더기를

찾아서 그리워하기로 마음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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