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탄생, 김자혜, 세미콜론(2022)
세미콜론 X 에세이 X 시리즈 '띵'
인생이 모든 '띵'하는 순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나만의 작은 세상
여기 동그란 식탁이 있습니다. 혼자 식사를 할 때도, 둘 혹은 셋, 그리고 그 이상이 모여도 어색한 빈자리가 생기지 않습니다. 이곳에서는 누구나 마음속에 품어온, 보물 같은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하고 싶은 마음,
'띵' 시리즈는 계속됩니다.
007 호원숙 엄마 박완서의 부엌
010 배순탁 평양냉면
*** 김현민 남이 해준 밥
여름에 어울리는 싱그러운 표지에 이끌려 고른 책입니다. 한 때 '아무튼' 시리즈를 사랑해서 도서관에 여기저기에 흩어진 '아무튼'을 발견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이 책을 계기로 '띵'시리즈 보물 찾기를 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특히 호원숙, 배순탁 님의 책은 꼭 찾아서 읽고 싶습니다. 출간 예정이라고 하는 김현민 영화 저널리스트의 책도 기대가 됩니다.
패션 에디터, 콘텐츠 디렉터, <조금은 달라도 충분히 행복하게>라는 책의 저자인 김자혜님이 쓴 책입니다. 부엌, 식탁, 끼니, 돌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다소 무거워질 수도 있는 이야기의 흐름을 재치있게 풀어내서 그런지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
매 에피소드 마지막에 있는 '오늘 배운 것' 한 줄이 편지의 추신처럼 피식 웃음이 나게 할 때도 있습니다. 이 부분의 환기가 에피소드를 개운하게 마무리하는 양치질 느낌이기도 합니다.
허기는 공평하고, 누구나 끼니를 걱정한다.
이 책의 첫 문장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밥상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을 하는 '식탁 독립'을 하기 전까지는 끼니에 대한 걱정의 무게와 책임감은 '누구나' 같지는 않을 것입니다. 김자혜 저자도 이야기하듯이 어떤 사람들은 끼니를 챙겨 먹을 줄 모르는 채로 늙는다는 것입니다.
끼니는 쉼 없이 찾아와 간섭한다. 매일매일 나의 나태를 꾸짖는 끼니. 그 근면이 끔찍할 정도다.
제가 매일 살고 있는, 벗어나지 못하는 일상의 문장입니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 외출을 할 때도 끼니를 마음 놓고 넘기지 못하고,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끼니는 준비하지도 못하며 야릇한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그... 것을 '근면'이라고 말할 수 있군요. 끼니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반성하고 스스로를 꾸짖는 쳇바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의 근면함이란!
끼니에 대한 나태함은 어찌나 쉽게 드러나는지, 냉장고만 열어도 빈 반찬통만 보아도 바로 탄로가 납니다. 스스로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식탁 독립'을 한 자를 향한 끼니의 채찍질은 쉼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끼니를 완성하기 위해서 장보기, 재료 보관, 조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 설거지에 이르는 보이지 않는 촘촘한 과정이 있기 때문에 '조리'에서 나태의 질책을 면한다 해도 다른 문제들은 언제고 고개를 듭니다.
[열두 가지 레시피]이 저자 칼 필터넬은 셰프이자 세 아들의 아버지이다. 대학에 간 큰아들로부터 매일 레시피를 묻는 전화를 받고 충격에 빠진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삶의 기술을 아들에게 전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나온 명대사! "스스로 밥상을 차려 본 적 있습니까?"
이건 거의 공익 광고의 문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누구라도 한 번은 스스로 밥상을 차려 보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운 삶을 위한 필수적인 삶의 기술!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기 위한 과정을 스스로 해내는 것은 참 중요한 것 같습니다. 끼니를 대하는 태도와 끼니를 해결하는 방식은 너무 중요한 '삶' 자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끼니를 때우는 사람은 삶의 중요한 주춧돌을 허투루 놓는 것이므로 언제가 그 삶은 때우지 못할 정도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음식 자체뿐 아니라 과정도 좋은 한 끼는 좋은 사람을 만듭니다.
나는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할 일이 도처에 널려 있어도 식사를 중요하게 여기기로 결심했다. 매일 반복될 그 다짐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한 색의 사랑 표현일 것이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보이지 않고 잊히는 '가사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사랑'을 표현하고 갈구하는 끼니의 아름다움을 찾고 싶습니다. 끼니의 근면한 간섭과 질책을 '사랑'으로 해석하고 그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에너지를 어떻게든 때우고 보는 끼니가 아니라 윤기가 좌르르 흐르지는 않아도 나를 해치지 않는 끼니를 먹기로 마음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