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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인사말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줘야지

by 정다운 너

독일어 수업에서 우리는

기본적인 인사말. 그러니까 안녕하세요, 잘 지내요? 고마워요, 같은 것들을 연습해. 사람을 만났을 때, 건네는 말들을 익혀. 익숙해지는 낯선 외국어는 그렇게 인사말로 시작해. 우리는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만남을 시작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지.


그런데 내가 온 도시에서는 인사말을 아껴. 마주치는 눈길을 피하고 부딪히는 시선을 돌리고 눈 맞춤으로 빛나는 순간을 배기가스처럼 또다시 피하고 그래야 할 것 같은 거대 도시는

그래서 사람들을 삼키는 것 같아. 그곳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그리고 살아 있다는 건 나로서는 대단한 일이야. 살아남는다는 거지.


안녕하세요, 를 대신해

환영합니다 혹은

어서 오십시오,라는 말.

반갑습니다, 고객님.

사랑합니다, 구민님 같은 말.

친절하다기보다는

창백해.


백화점 주차장 입구에서

손을 흔들며

히터가 내뿜는 온기를 느끼며 주차할 차량을 운전하는 고객들이 곁눈으로

훑는 서비스직 안내요원들의

얼굴만큼이나 핏기가 없어.


(우리가 혹은) 그대가 건네는 인사가

4 균 구동 차량의 바퀴소리에 묻혀

인사말이 되기보다는 혼잣말이 되어

빛없는 환기구 없는 창문 없는 주차장 옹벽에 스며

습기가 되어

물방울이 되어

툽툽한 곰팡이로 피어나.


무뎌지는 기대와

아프지 않으려는 감정의 방임이

그 소녀와 그 소년들을

더욱 무표정하게 만들지.

마네킹 같은 표정으로 굳어지게 내몰아가지.

그런 궁지에서 우리는 그저 인사말조차 아끼며

말수 적은 사람이 되어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런) 도시에서의 표정은

한강 다리 위의 조명처럼

파리하고

한강 다리 밑의 조명처럼

텅 빈 채 화려해.


사람들이 자꾸 카페에 모여드는 건

조금 더 창백해지기 전에

그 창백함을 가려줄 따뜻한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일 거야.


우리는 이유 없이 아프고

긴 늦잠 끝에도 피곤해.


멀리 간 아빠가

열 밤 자고 나면 돌아온다던 아빠가

아직 그 도시에 있대.

그를

기다리는 마음이

해지고

낡아지고

누더기처럼 누추해져

초라해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마음.

혼자서 끙끙 앓는 마음.

말이 되지 못해 그 속에

더 깊이 갇히는 마음.

답답한 마음에

눈물을 길어 올리는 마음.

아물지 못한 마음.

툭 치면 고인 눈물을

토해내던 어린 마음.


우리는 어른이 되어도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도닥여야 해.


그 아이의 슬픔을 들어줘야지.


너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 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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