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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농담

by 정다운 너




유전적 습관, 습관으로 둔갑한 유적적 요인들.

하염없는 날들을 거슬러 세상에 내린 빗방울 수만큼 많은 밤과 낮을 되돌려 새하얀 눈이 흩날리다 쌓이고 얼었다가 녹는

그래서 어깨가 시린, 겨울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전에 세상에서도 아침에 일어나고 마실 것을 찾고 무서운 것을 보면 도망가고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사랑하면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천둥소리에 몸을 숨기고 어쩌다 빛이 스민 동굴 안에 추억을 새기고 황홀함을 기억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화를 내고 화가 난 마음에 소리치고 소리친 후엔 후회하고 고픈 새끼에게 줄 것을 사냥을 하고 지어 입히려 가죽을 깁고 덩굴과 가시를 피해 산딸기를 모으고 물가에 나가 몸을 씻고 물고기인양 헤엄도 치고 어쩌면 뭉근한 진흙을 가져다 그릇을 빚고

빗살 문양도 넣어보고 밤새 마른 그릇을 들어 올려보고

그 안에 알곡도 담아보고 바람과 그늘 속에서 나를 닮은 너를 보며 한껏 미소를 짓다가 볼을 부비고 냄새를 맡고 머리를 쓰다듬고 품에 안고 입을 맞추고 눈빛을 살피고 하늘을 보며 오늘의 날씨를 점치고 출산의 고통 앞에서 나약하게 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죽음의 고통 앞에서 나약하게 눈물을 흘리고

죽음을 목격하고

죽음을 인정하고

애도하고

미워했던 마음을 후회하고

더 주지 못한 사랑에 한탄하고

죽음을 맞는다.


독사에 물리거나 이름 모를 병마에 시달리거나

성난 짐승에게 물어 찢기거나

세찬 물살에 휩쓸리거나

굴러 떨어지는 바윗덩이에 내쳐지거나

헛디딘 발걸음에 천길 낭떠러지로 실족하거나

불행은 어디에나 있고 언제나 있고


, 가을, 여름과 겨울, 우기와 건기 그리고

그 계절의 순환을 돌고 돌아

나이를 먹고 시간을 먹고

고통 속에서도 공기를 마시고

물을 마시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먼 시간을

다시 볼 수 없는 얼굴을

가 보지 못한 세계를

가 볼 수 없는 우주를

인간은 혼자라는 사실을

조용히 목도하며

엮은 볏짚을 끌어당긴다.

다시 잠을 청한다.


밤은 언제나 춥고

오지 않은 내일은 멀고

박명이 채우지 못한 어둠 속에서

잠결을 걷는다.

길을 떠난다.


죽은 후 단 하나의 선택 앞에서 따뜻한 빛으로 태어나

빛으로 말하고 볕으로 속삭인다.

동산 너머 동녘에서 빛을 길어 올리고

너를 묻은 봉운 앞에 선 나를 비춘다.

이건 너의 농담이자 나의 속삭임이다.


네가 거기 있다는 사실을 너는 먼 길을 돌아

나에게 고백한다. 아침 해가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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