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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길

by 정다운 너



네가 아직 곁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나는 알아.

증명되지 않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어.

언어와 논리, 틀 안의 구조 속에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설득된 사실을 반증하거나

깨달은 것에 대한 납득할 만한 증거의 명시.

그것이 없이도 나는 알아.


두려움 없이, 수줍음 없이 우리는 사랑했고

찾아와야 하는 운명이 문 앞에 닥쳐 우리를 포박했을 때

우리는 깨끗히 항복했어.


그래 그건 함락.


나는 잠결에도 그 하얀 깃발이 꽂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내가 살 수 있겠어.

이건 그저 나머지의 삶이지.


어김없이 아침이 찾아오고 창밖의 새들은 여전히 천진하게 지저귀고

얼었던 땅이 녹아서 초록이 돋아나.


이 봄은 이 생에서 오늘이 단 한 번이래.

저 꽃잎의 봄빛은 오늘이 유일하대.


모두에게 단 한 번의 삶이 주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증명할 필요가 없겠지.


우리는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나는 또 얼마나 멀리 가야 하나.


혼자 걷는 길 위에 봄볕이 따라와.

증명하지 않아도 나는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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