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12편
놀랍다. 내려오는 도중에 예전에 함께 근무하던 직장 동료를 만났다. 내가 내려가는데 그분은 올라가고 있었다. 서로 너무 놀라고 함께 반가워했다. 한국사람들이 워낙 이 시기에 많이 와서 어떤 구간에서는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전 직장 동료를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신기하다.
트레킹을 하면서 만나게 되는 롯지들은 대부분 예쁘다. 꽃들이 예쁘게 가꾸어져 있거나 페인트칠이 예쁜 곳도 있다. 가드닝에 힘을 줄 것인가, 외관에 힘을 줄 것인가는 순전히 주인장 마음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런 예쁜 롯지들은 트레커들에게 사진을 찍는 즐거움도 주고 맛있는 식사와 편안한 휴식도 준다.
그리고 트레킹 중간에 건너는 다리들도 다양하다. 어떤 다리는 잘 보면 양쪽에 나무를 걸고 그 사이에 판자를 얹고 그 위에 지푸라기들을 깔고 또 그 위에 흙을 덮은 것도 있다. 나름 잘 만든 다리다. 다만, 여름에 오면 이런 다리들은 모두 떠내려가고 물속을 걸어서 건너야 할 경우가 많단다. 그러면 저 다리는 매년 다시 만든다는 것인데 너무 아깝다.
유채꽃 계단밭이 아름다운 촘롱이다. 그 사이 유채꽃들이 다 진 것 같다. 다시금 바닥을 찍고 계곡을 건너 또다시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한다. 며칠 전에 여기를 내려갈 때는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몰라 다소 두렵고 두근거렸는데 이제는 올라오면서 여유로운 마음이다. 이 오르막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아! 간사한 인간의 마음이여!
여기가 촘롱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다. 번화(?)라고 하는 게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에는 저먼베이커리라는 카페도 있단 말이다. 나름 촘롱에서 가장 핫플레이스다. 즉, 이제 속세에 다 왔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물들어 모든 것이 상품화되는, 아, 또 시작이다. 이놈의 시니컬한 생각! 에잇, 다시 안나푸르나로 돌아갈까 보다.
여기서 학교를 보게 되다니 놀랍다. 사실 학교는 트레킹 길목에는 없다. 마안이 앞서서 숙소를 잡으러 간 사이에 내가 한눈팔다가 좌회전해야 하는 길을 놓쳐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우연히 보게 된 학교가 반갑다. 나름 큰 규모의 학교이다. 도착한 시간이 이미 학교가 끝난 시간이라 학교에는 아무도 없어서 그냥 외관 사진에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트레킹 길에서 벗어나자 온 동네 사람들이 여기가 아니라며 내려가라고 알려준다. 내가 묵을 롯지 이름을 대자 동네 아주머니들이 또 하나같이 이쪽으로 가라, 이리로 내려가라 자세히 알려준다. 나중에 어떤 아주머니는 지름길로 자기 집을 가로질러 가게 해준다. 그러면서 내려올 때 조심하라고 한다. 물론 다 내 추측이지만... 정말 친절한 사람들이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을 때 만나게 되는 할머니들처럼 느껴진다.
오늘 묵을 촘롱의 롯지에 도착했다. 마안이 서둘러 와서 방을 잡아서 다행이다. 촘롱은 지금 올라가는 사람들과 내려오는 사람들이 마주치면서 숙소가 거의 다 찼다고 한다. 이 롯지는 오늘 만실이다. 아, 여기는 올라올 때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었던 그곳이다.
시간 상으로는 더 내려갈 수 있지만 내 무릎 상태를 보고 마안이 속도를 조절하자고 했다. 현명한 생각이다. 어제 도반에서 묵지 않고 좀 무리해서 간드룩까지 오고 오늘 촘롱이 아니라 더 내려가서 묵으면 오스트레일리안캠프라는 곳까지 들러서 갈 수 있다. 거기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지 않고도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를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일종의 전망대 역할을 하는 장소라고 한다. 처음 출발할 때의 계획도 거기까지 들르는 것이었고 안나푸르나에서 내려오는 처음에도 그럴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 생각보다 나의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무래도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정말 말하기 어려울 만큼 무릎이 너무 아프다. 우리 집안 내력이 무릎이 약한 점도 있고, 나의 터벅터벅 걷는 습관 때문에 무릎이 더 약해진 점도 있다. 아. 도가니탕이 먹고 싶어 진다. 도가니수육도 먹고 싶다.
그런데 자기 위안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기 촘롱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물론 오스트레일리안캠프에는 가보지 않아서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본 중에는 여기서 보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가장 멋있다.
내가 엊그제 저 너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있었다는 사실이 아련해진다. 저렇게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데 내가 정말 저곳에 있었단 말이지? 오늘은 해 질 녘 구름이 끼면서 올라올 때 본모습과 다른 느낌을 준다. 구름 때문일까, 내 마음 때문일까...
촘롱에서 밤에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축하하는 마을 공연을 보았다. 마을 사람들 몇 명이 악단으로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몇 명이 전통 춤을 추면서 트레킹을 마친 사람들에게 꽃 목걸이를 걸어주는 것이었다. 트레킹 마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많은 때에 맞추어하는 것 같았다. 물론 약간의 팁을 주어야 한다. 그냥 심심한 저녁에 좋은 구경한 셈 치고 다른 사람들처럼 약간의 팁을 주었다. 이것도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리라.
공연 자체는 동네잔치 같은 분위기이다. 공연이라기보다는 그냥 동네 놀이마당 정도이다. 처음에는 동네 아가씨 몇 명이 전통 춤을 추다가 트레커들에게 목걸이를 걸어주고 같이 춤을 추자고 흥을 돋운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트레커들이 함께 춤을 춘다. 흥겹게 같이 춤추는 사람들도 있고, 나처럼 뒤로 빠져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 같은 몸치는 그냥 박수를 쳐주는 것이 더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