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트레킹 13편
다음날 아침, 날씨가 너무나 청명하다. 이제 촘롱을 출발한다. 여기서부터는 올라올 때 지났던 '지누난다' 방향이 아니라 반대편인 '간드룩' 방향으로 내려간다. 바로 이 시기에 나의 후배가 '지누난다' 쪽에서 올라와서 안나푸르나에 올라갔단다. 그렇게 우리는 엇갈렸다.
구름은 말끔하게 걷히고 저 멀리 마차푸차레가 선명하게 보인다. 그리고 안나푸르나도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은 너무나 맑다. 이제 큰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들과 작별을 한다. 한걸음 한걸음 내려갈 때마다 조금씩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가 멀어져 간다. 이 또한 산행의 과정이리라. 만남과 헤어짐의 과정. 인생사가 그러하듯이.
길을 가면서 염소 일행을 만났다. 정말, 정말 많다. 근데 얘네들이 뜯어먹을 풀이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다. 아기염소가 흙을 먹는지, 작은 풀싹을 먹는지 엄마가 지켜보고 있다. 정말 먹을게 뭐 있니? 왜 이렇게 황량한 곳에 염소 떼를 풀어놓은 걸까? 아니, 얘네들이 이 근처의 풀을 다 먹어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한 곳에 너무 많은 염소를 모아 놓은 거 아닐까 싶다.
올라올 때도 봤지만 정말 계단식 밭이 쫘악 펼쳐진 것이 장관이다. 가파른 산비탈을 저렇게 개간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을까, 인간이란 정말, 징글징글한 존재다. 살기 위한 처절함이겠지? 이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단식 밭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저 밭 한 줄이 한 가족의 생명줄일 수도 있겠다.
이번에는 당나귀 일행을 만났다. 이들은 저 위까지 짐을 실어 나르고 있다. 저번에 올라갈 때 만났던 당나귀가 생각난다. 짐을 바리바리 싣고 올라간다. 저 짐들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생필품들이다. 당나귀의 거친 숨소리가 안타깝지만 저 위쪽 동네 사람들에게는 이들이 꼭 필요하다. 수고가 많다. 당나귀들아.
그런데 올라오는 애들이 두세 마리 정도일 줄 알았는데 거의 10마리가 연속으로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게다가 이렇게 마주치면 문제는 흙먼지가 장난이 아니게 올라온다는 것이다. 당나귀 일행을 만나지 않더라도 이 길은 흙먼지가 많이 일어나는 길이다. 왜 마스크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는지 알겠다. 정말 요긴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이 길로 올라가고 '지누난다' 방향으로 내려가는데 나는 이 길을 내려가는 코스로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만약 올라오는 길이었다면 이 먼지를 들이마시면서 올라와야 했을 것이다. 건기라서 더욱 흙먼지가 많다.
저 멀리 아래에 마을과 개천이 보인다. 저기까지 내려가야 한단다. 벌써부터 무릎이 너무 아프다. 무릎보호대를 해도 아프다. 조심조심 천천히 내려가 본다. 전에 페루에서 잉카트레킹 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내리막이 어려웠다. 아, 그때는 이스라엘에서 온 아가씨가 나보다 더 무릎이 아파서 쩔쩔매는 걸 보고 그게 좀 위안(?)이 되었다. 나보다 혹은 나만큼 아픈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 못됐다.
제법 많이 내려왔다. 이제는 풀들이 좀 많아 보인다. 아까 그 염소 떼들이 여기에 오면 좋겠다. 이제 바닥가지 내려와서 다시 다리를 건넌다. 저번에 봤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만든 다리다. 이게 좀 더 튼튼해 보인다. 하긴 당나귀 떼들도 여기를 건넜을 테니까 다리가 정말 튼튼해야 할 것이다.
이제 개천을 건너고, 그런데 개천을 건넌다는 것은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적어도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는 그렇다. 다시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한다. 거의 두 시간을 쉼 없이 올라가야 한다. 징글징글한 오르막길 내리막길. 투덜거리면서 걷다 보니까 어느새 제법 높이 올라왔다.
쉬면서 음료수를 먹고 있는데 갑자기 말이 내 식탁으로 난입했다. 가던 길을 가야 하는데 가다가 멈추고 자꾸 이쪽으로 오려고 했다. 아마도 목이 말랐나 보다.
그리고 여기 내 황금색 물통이 보인다. 이제는 내 손을 떠나서 누군가에게 잘 있겠지? 이 물통은 내려오다가 숙소에서 만난 한국사람에게 주었다. 엄마와 아들이 용감하게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왔는데 포터나 가이드도 없고, 침당도 얇고, 스틱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보온에 대한 대책도 없다는 것이다. 뭐든지 올라가면 빌릴 수 있을 줄 알고 있다. 하지만 포카라에서 필요한 것을 빌려 왔어야 했다. 여기는 트레킹 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무엇을 살 수 있는 상점은 거의 없다. 빌려주는 곳은 아예 없다. 그래서 대부분 포카라를 기점으로 트레킹을 준비하는 것인데 이 모자는 그런 부분을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검은색과 황금색 물통이 두 개 있어서 그중 하나를 주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돈을 받았으니 팔았다고 해야지. 친구에게서 한 쌍으로 선물을 받은 것이라 나에게도 의미가 큰 것이지만 더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젊은 아들은 그렇다 쳐도 연세 드신 엄마는 자칫하면 저 위에서 큰일을 치를 수도 있다. 물통이 요긴하게 사용되기를, 그리고 그들이 무사히 산행을 마치기를 기원해 본다.
이번에는 갑자기 말 일행과 마주쳤다. 아까는 길 가던 말이 내 식탁을 탐하였는데 이번에는 두 마리의 올라오는 말을 만났다. 마안이 말의 뒷발길질에 다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경고해서 얼른 옆으로 비켜 주었다. 오늘은 마주치는 동물들이 많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