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에 미치다(3)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by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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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안주와 둘레길 풍경


상황마을에서 둘레길 표지판에서 가리키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등구재 황토방이라는 민박겸 식당을 만나게 된다. 여기 주인아주머니는 변함없이 밝고 인심 좋으신 분이다. 막걸리 한 잔을 시켜도 주워 먹을 안주거리를 푸짐하게 내어 주시고 둘레꾼들 집어가라고 귤이나 사과를 문 앞에 내놓으신다. 아주머니의 넉넉한 인심과 밝은 미소가 참 좋다.

그래서 이 근처를 지날 때는 둘레길을 걷지 않아도 일부러 들러 맛있는 것을 먹곤 한다. 얼마 전에 가보니 식당을 리모델링해서 전보다 넓어졌다. 아주머니의 따뜻한 인심은 여전하시다.

식당을 나와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잘 닦인 농로를 따라 계속 올라간다. 여기도 처음 걸을 때보다 집이 늘었다. 변화의 바람은 도시나 농촌이나 다르지 않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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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구재


농로를 따라 슬슬 올라가면 산길이 나온다. 그리고 곧 등구재를 넘는다. 등구재는 3코스에서 제일 높은 고개이지만 실제로 산을 다녀본 사람들에게는 그냥 언덕 정도 수준이다. 도로가 뚫리기 전에는 남원에서 함양으로 넘어가려면 이 등구재를 넘어야 했다고 한다. 지리산둘레길은 이렇게 옛날부터 사람들이 다니던 길, 마을과 마을을 넘나들던 상인들이나 주민들이 이용하던 길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참 좋다. 뭔가 구수한 옛이야기를 전해줄 것 같은 길이다. 이 등구재를 넘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이 고개를 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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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계단과 연못

등구재를 넘어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 내려간다. 올라오면 그만큼 내려가야 하는 것이 산이다. 어쩌면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올라간 만큼 내려와야 하는 것. 그것이 산이고, 인생이다.

내려가다 보면 계단 구간도 있고 물웅덩이라고 부를 법한 연못도 있다. 나무가 우거진 길이라 여름에 걷기 시원한 길이다. 다만 어떤 구간은 내리막 경사가 급하므로 무릎을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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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과 농로

한참 내려가다 보면 느닷없이 다시 넓은 농로를 만나게 된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느낌이다. 숲길을 벗어나는 길목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평상이 있다. 참 적절한 위치에 있는 쉼터이다.

이제는 큰길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가게 된다. 이 길의 주변에는 감나무 과수원이 정말 많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을 이렇게 많이 먹는 줄 몰랐다. 내가 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몰랐던 걸까? 고사리에 이어서 또다시 놀라고 있다. 둘레길을 걸으면서 고사리와 감이 우리의 주식이 아닌가 생각했다.



IMG_4804.JPG 지리산과 벤치

이제부터는 탁 트인 전망으로 지리산 자락을 보면서 걷게 되는데 가슴이 시원해진다. 걷다 보면 길가의 넓은 공터에 벤치도 있고 지리산 능선 모양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안내문도 있는 곳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쉬면서 지리산 봉우리들을 바라보면 기분이 절로 좋아진다. 지리산둘레길은 지리산 속에 있다기보다는 지리산의 주변에 있는 길이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지리산에 오르면서는 주변 풍경을 보는 맛이 있고 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면서는 지리산을 보는 맛이 있는 것이다.

내리막길을 한참 걸으면 바로 앞에 지리산 능선들이 펼쳐지는데 시원시원하니 걷는 기분이 참말로 좋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쉬어갈 수 있는 정자들이 많다. 보아하니 그중에는 감농사 지으시는 분들의 쉼터인 듯한 정자도 있다. 깨끗하게 사용하고 자기가 만든 쓰레기는 자기가 가지고 가는 둘레꾼들이 되었으면 한다.



IMG_4839.JPG 둘레길에서 바라본 지리산

그렇게 한참 내려가다 보면 시멘트길이라 발바닥이 아파질 때쯤 다시 숲길로 접어드는데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지리산 자락을 보면서 쉴 수 있는 큰 평상이 있는 곳이 나온다.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면서 지리산을 바라보는 맛이 여전히 너무 좋다. 이 평상이 있는 쉼터에서 내려서면 바로 창원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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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마을의 카페

평상에서 내려와 창원마을로 접어들면 '안녕'이라는 예쁜 카페가 있다. 카페 내부의 칠판에 쓰인 시는 카페 주인의 자작시이다. 자세히 보면 결혼 1주년 기념으로 남편이 아내에게 바치는 시이다. 이후 이곳도 단골이 되어 자주 갔는데 매년 아내에게 바치는 시가 바뀌었고 그 사이 어여쁜 아가도 태어났다. 한없이 마음이 순해지는 공간이다. 시원한 오미자차를 주문하니 예쁜 꽃과 함께 얼린 얼음을 동동 띄워준다.



20181028_024344047_iOS.jpg 점프샷 도전하고 싶은 언덕길

카페에서 나와 둘레길 푯말을 확인하고 다시 농로를 따라 걷다 보면 마을을 벗어난다. 거기서 얼마 가지 않아 잘하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언덕을 만난다. 저 오르막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하게 하는 예쁜 길이다. 여기서 점프샷을 하면 멋질 것도 같다. 나는 무릎이 아프므로 점프샷은 생략. 이 언덕을 넘어서면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길가에는 민박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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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내려다보며 걷다 보면 다시 산길로 접어든다. 산길에서 조금 오르막이 있지만 이내 능선을 따라 걷게 된다. 그리고 나무들이 우거진 오솔길을 걷다가 내리막이 시작된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남의 밭두렁을 지나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바로 금계 마을이다. 금계마을에는 예쁜 집들도 많고 펜션도 매우 많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바로 뒤에도 민박집이 있다.


IMG_4976.JPG 금계마을 버스정류장

둘레길이 끝나는 지점은 버스 정류장 옆이고 여기에 넓은 주차장과 화장실이 있다. 인월이나 남원으로 가는 버스가 자주 다니므로 다시 인월로 가고자 한다면 이 정류장에서 바로 버스를 타면 된다.


이렇게 인월에서 시작하여 금계까지 걸어왔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는 별생각 없이 지리산둘레길이라는 것을 한 구간 정도 경험해 보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3코스를 다 걷고 나니 너무 좋다. 산길도, 농로도, 시냇물도, 마을도 다 좋다. 적당히 힘들고 적당히 쉬워서 때로는 생각에 잠겨 걷기도 하고 때로는 풍경에 빠져 걷기도 하는 것이 좋다. 문득 다음 길은 어떤지 궁금해졌다. 다음 길도 이렇게 좋을까? 그래서 예정에 없던 다음 구간 즉 4코스를 이어서 걸었다. 그리고 4코스를 하고 나니 5코스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서서히 나는 지리산둘레길에 미쳐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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