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1)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금계-동강

by 바람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을 처음 걷고 나서 원래 계획은 3 코스만 하고 집에 가려고 했으나 지리산둘레길의 매력에 푹 빠져 금계에서 동강까지 4코스도 이어서 걸어 버렸다. 걷다가 지리산 쳐다보고 또 걷다가 마을도 쳐다보고 또 걷다가 나 자신도 바라보고...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 공간이 지리산이기 때문에 더 좋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기도 기본적으로는 2014년 8월을 기준으로 작성하였다. 하지만 간간히 업데이트된 정보도 일부 담았다.


지리산둘레길4코스.jpg 지리산둘레길 금계-동강 구간(네이버 지도)



지리산둘레길 4코스는 11킬로이고 보통 사람들 걸음으로 4시간 정도, 내 걸음으로 5~6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찾아보니까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 금계-동강 구간에 벽송사를 경유하는 길이 옵션으로 추가되어 있다. 벽송사를 경유한다면 12.7킬로이고 보통 소요시간은 5시간 정도라고 한다. 아마도 내 걸음으로는 7~8시간이 걸리겠다. 벽송사를 경유하지 않으면 고도 변화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을 걷지만 다소 지루할 수 있다. 다음에 이 구간을 가게 된다면 벽송사를 경유해서 걸어봐야겠다.


여기도 유용한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주차는 금계 버스정류장 옆의 둘레길 주차장도 괜찮고 동강 쪽의 공터 주차장도 괜찮다. 동강 쪽의 공터는 넓지 않지만 나무에 둘러싸여서 한여름에 세워둔다면 동강 쪽이 더 좋을 듯싶다.

-대중교통은 동강에서 금계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으니까 (제일 마지막 사진 참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거리도 짧은 편이고 중간에 간이식당도 두어 군데 있고 해서 간단히 물과 간식거리만 챙겨도 된다. 다만 햇볕을 피하지 못하는 찻길 구간이 길기 때문에 반드시 모자를 챙겨야 한다.

-숙소는 금계에 펜션과 민박이 많다. 하지만 동강에서는 민박집 하나 정도만 있는 것 같은데 지금 영업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둘레길 중간에도 펜션이나 민박집이 간간히 있다.

-화장실은 금계 출발점에 둘레길 화장실이 있고 끝나는 지점인 동강 쪽에도 둘레길 화장실이 있다. 중간에는 공중화장실은 없으므로 간이식당에서 간식 먹고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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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계에서 의중마을 가는 길

금계에서 다리를 건너 아스팔트 길을 조금만 걸어가면 갑자기 대나무 숲 사이로 가파른 나무 계단길로 올라가는 길이 나온다. 별생각 없이 걸으면 놓치기 쉬우니까 잘 봐야 한다. 치받아 오르는 계단을 헉헉 거리면서 올라가지만 그 구간은 짧다. 그리고 그 대나무숲을 살짝 거닐다가 내려가면 허무하게도 바로 의중마을이 나온다. 즉, 대나무 숲 계단을 거치지 않고 금계에서 다리를 건너 큰길 따라 걸어도 의중마을이 나온다는 뜻이다. 그래도 대나무 숲길이 운치도 있으므로 둘레길 코스대로 걷자. 만약 헉헉대기 싫으면 큰길 따라 곧바로 의중마을로 접어들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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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산목과 의중마을

의중마을은 아담하지만 여기에 500년 된 느티나무 당산목이 있다. 옛날에는 마을마다 오래된 나무들이 있어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모시고 제사도 지내고 그랬다. 어떤 종교에서는 그런 것을 미신이라고 하던데 그냥 사람 사는 곳에 당연히 있는 문화라고 보면 된다. 예전에 중국 실크로드 여행을 갔을 때 사막의 마을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도 이런 당산목 같은 것이 있고 사람들은 거기에 소원도 빌고 마을의 안위도 빈다. 마을보다 더 오래된 나무에 마음을 의지하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보편적 문화인 것이다.

이 나무는 사람들보다 더 오래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뭔가 신비롭다. 짧은 생애를 살다가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지켜보았을 나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당산목 아래에서 지리산둘레길 스탬프도 찍을 수 있단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는 그런 게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스탬프북을 사서 거기에 도장 찍으러 다시 둘레길을 돌고 있다. 이런 것도 둘레길의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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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석장과 부처님 얼굴

의중마을을 지나고 나면 잠시 잘 닦여진 농로를 따라 걷는다. 그런데 가다 보면 멀리 채석장이 보인다. 이 채석장은 3코스의 후반부에서도 보이던 것이다. 멀리서 돌 깨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채석상에서 부처님 모습 같은 것이 희미하게 보인다. 착시 현상인 것 같기도 하고 신기하게 생각되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지리산 천왕사 천왕대불이란다. 세계 최대 규모로 조성되고 있는 거대한 불상이란다. 채석장과 거대불상이라 뭔가 어색한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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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로 들어가는 이정표

평탄한 농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숲길로 들어선다. 이때도 숲길을 놓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아주 작은 오솔길을 걷게 되는데 중간에 너덜길, 즉 바위가 흩어져 있는 길도 나오니까 발목을 조심해야 한다. 농로나 아스팔트길은 길이 잘 닦여서 걷기 편할 것 같지만 오래 걷기에는 숲길이 더 편하다. 한참 걸으면 발바닥과 허리의 통증에서 차이가 난다. 좀 긴장해서 걷더라고 숲길, 흙길이 많은 구간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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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식물들

숲길을 걷다 보면 신기한 식물들을 보게 된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구간에서는 다양한 모양의 버섯을 보게 된다. 노랑, 빨강의 예쁜 버섯들도 있고 마이크 모양의 희한한 버섯도 있다. 당연히 이런 버섯들은 독버섯이므로 절대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좀 아는 것 같이 생긴 버섯도 마찬가지이다.

버섯만큼이나 신기한 것은 나무의 모양이다. 나무마다 제각각 모양이 다르다. 물구나무를 서서 다리를 쩍 벌린 것 같은 나무도 있고 거대한 손 모양을 닮은 나무도 있다. 담쟁이가 휘감고 있는 나무도 있고 바위 틈새를 비집고 자리한 나무도 있다. 나무들의 개성이 인간들의 개성 못지않다.



IMG_5124.JPG 용유담

숲길을 빠져나오면 이내 용유담이 나온다. 낚시하는 강태공도 보고 전설도 읽는다. 안내문에서 아홉 마리 용과 마적도사, 당나귀 전설이 내려온다고 쓰여있는데 자세한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찾아보았다.

용유담가에 마적도사가 살았는데 당나귀에게 생필품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당나귀가 심부름을 갔다 와서 맞은편에서 크게 울면 마적도사가 쇠막대기로 다리를 놓아 이쪽으로 건너오곤 했다. 하루는 당나귀를 심부름 보내놓고 장기를 두고 있었는데 근처의 용 아홉 마리가 놀다가 싸움이 일어났다. 용들이 싸우는 소리가 너무 커서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는데 마적도사는 장기에 몰두하기만 했다. 당나귀가 와서 크게 울었으나 마적도사가 듣지 못했고 지친 나귀가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적도사가 화가 나서 장기판을 던져 용들을 쫓아냈다고 하는데 장기판의 그 부서진 조각들이 용유담가에 흩어져 있다고 한다.

지가 못 들어 놓고 엄한 곳에 화풀이를 한 마적도사는 한 성깔 하는 것 같고, 사이좋게 지내지 않은 아홉 마리 용이 철딱서니 없는 것 같다. 결국 울다가 지쳐 죽은 나귀만 불쌍한 건가? 다소 어이없는 결말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경치에 재밌는 전설 하나쯤은 있어야 구색이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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