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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고 또 오르면(1)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성심원-운리

by 바람

2014년 8월에 시작한 지리산둘레길 걷기가 해가 바뀌어 2015년에도 이어지고 있다. 한겨울에는 둘레길을 걷지 않았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겨울 걷기는 가급적 자제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에서도 한겨울과 한밤중 걷기는 자제해 달라고 권하고 있었다.

2015년 봄이 시작을 알리자마자 다시 길을 나섰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3월이지만 내 마음만은 꽃이 피었다. 지리산둘레길로 향하는 웃음꽃이 밝게 피었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마음은 늘 두근거린다.



지리산둘레길7코스.jpg 지리산둘레길 성심원-운리(네이버지도)


지리산둘레길 7코스인 성심원 운리 구간은 13.4킬로인데 길의 변주가 가능한 구간이다. 성심원에서 출발해서 아침재를 거쳐 운리마을로 가는 길이 일반적인 둘레길 코스로 13.4킬로는 이 길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보통은 5시간 걸리고 난이도는 '상'이다. 성심원에서 출발해서 어천마을로 돌아서 다시 성심원으로 회귀할 수도 있단다. 그 길은 7.3킬로이고 약 3시간 걸린다고 한다. 이 순환 코스는 동네 한 바퀴 도는 옵션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저번에 성심원에서 아침재까지 걸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아침재에서 출발해서 운리마을까지 갔다. 시간은 6시간 30분 걸렸다. 성심원에서 아침재까지 약 2.3킬로를 30분 정도 걸었으니까 그 시간까지 합치면 7시간 걸린 셈이다. 보통 사람들보다 2시간 더 걸렸다. 난이도가 '상'인 이유를 알 것 같다. 초반부에는 한도 끝도 없는(거의 수직처럼 느껴지는) 거친 오르막을 한참 올라가야 하고 그 후로는 길고 긴 시멘트 길을 걸어내려 가기 때문이다. 비율로 따지면 초반 25%는 수직 오르막, 중반 65%는 시멘트 내리막길, 후반 10%는 마을길. 대략 이렇다.

하여튼 간 지리산둘레길을 종주하면서 여기만큼 힘들었던 곳은 없던 것 같다. 오르막에서는 힘들고 내리막에서는 지루하다. 꽃이 많이 핀 계절에는 좀 다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길고 긴 내리막에 그늘이 없으므로 여름은 피하는 게 상책일 듯하다.


걷기 전에 유용한 정보를 살펴보면

- 교통편이 아주 어려운 구간이다. 성심원에서 다리 건너면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산청이나 함양으로 가는 버스가 가끔 다닌다. 어천마을도 마찬가지다. 운리는 아마도 농어촌버스가 다니는 듯하다.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의 안내에 따르면 원지라는 곳에서 운리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이러한 버스는 하루에 한두 대가 다니는 것 같다.

대중교통으로 이 구간을 걸으려면 성심원에서 출발하여 운리까지 가는 걸로 끝나면 안 되고 그다음 코스인 운리-덕산 구간까지 갈 각오를 하는 게 좋다. 덕산은 큰 마을이라서 버스가 비교적 자주 있다. 다만 두 코스를 하루에 하기는 무리가 되므로 운리에서 1박 하는 게 좋겠다.

나는 운리 쪽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택시를 불러서 어천마을로 가서 출발하였다.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걷는 것이 나쁘지 않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 중간에 아무것도 없다. 주점도, 구멍가게도 없다. 중간은 물론 시작점이나 끝점인 어천마을에도, 운리에도 아무것도 없다. 정말 꼭 물과 점심, 간식을 잘 챙겨야 한다.

- 숙박은 어천마을에 펜션, 민박하는 곳이 좀 있고 운리 쪽에 펜션, 민박 등이 좀 있다.



IMG_6877.JPG 아침재에서 출발

아침재에서 아침에 출발하였다. 이름이 참 예쁘다. 아침재라고 읽고 아침 햇살을 떠올린다. 처음에는 그다지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살짝 올라간다. 이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몰랐다. 상쾌한 산내음을 맡으며 룰루랄라 걸었다. 겨우내 오랫동안 기다린 둘레길이라 발걸음을 더 신이 났다. 이런 숲길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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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의 전망

어느 순간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한참 동안, 오래오래, 그렇게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다. 길은 지그재그로 이어지고 숨은 너무 가쁘다. 이럴수록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올라가야 한다. 안 그러면 중간에 퍼지는 수가 있다. 결코 무리하면 안 된다. 산을 오를 때면 나를 허락해 준 산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내가 갈 수 있는 속도로 올라야 한다.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니 점차 전망이 좋아진다. 역시 힘들게 올라가면 그만큼 경치는 더 좋다. 만고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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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나무들

힘들면 사진을 찍자. 여기서도 나무들은 다양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산의 아래쪽에는 침엽수가 많았는데 올라갈수록 활엽수가 많다. 그래서인지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여 지금은 황량한 것 같다. 여름이나 가을에는 경치가 예쁠 것 같다. 근데 나무껍질이 다양하다. 울퉁불퉁 거친 나무도 있고 아주 미끈한 나무도 있다. 각자 나름대로 생존을 위해 진화한 것이리라. 나의 껍질은 어떤 진화를 거치고 있을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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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경사 구간

히말라야도 아닌데 산소가 부족함을 느낀다. 쉬엄쉬엄 올라가도 힘들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아찔한 오르막이다. 체감으로는 경사도가 거의 수직에 가깝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가파른 길은 무섭다. 어쩐지 뒤쪽으로 누가 잡아당겨 굴러 떨어질 것 같다. 계단을 굴러 떨어진 트라우마 때문에 더 무서운 거 같다. 이럴 때는 뒤를 돌아보지 말자. 앞만 보고 가자.





IMG_6936.JPG 웅석봉 하부 헬기장

아침재에서 웅석봉 하부 헬기장까지 2.5킬로인데 2시간 반이 걸렸다. 역대급으로 느리게 걸었다. 오르막으로만 거의 2킬로 정도 되는 구간이다. 정말 빡센 오르막길이었다. 오르락 내리락이 있으면 좀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지그재그로 오로지 오르막만 이어지는 길은 징허다. 그래도 이제 오늘의 오르막은 끝이라고 생각하니 안심이 된다. 이제부터 룰루랄라 하면서 걸으면 되나?

이곳에는 웅석봉 정상까지 가는 길이 있다. 정상으로 가는 산꾼을 보았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든데 정상이라니... 반면에 아래쪽 계곡으로 가는 길도 있다. 계곡길은 험하고 물이 많을 때는 위험해서 폐쇄한다고 한다. 어쨌든 두 길 모두 둘레길 코스는 아니다. 지리산둘레길은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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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치김밥의 겉과 속

여기서 편의점에서 산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을 때운다. 이따 걷기를 끝내고 삼겹살을 먹을 예정이므로 지금 이 초라한 점심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김밥은 문제다. 이름과 너무 다르다. '실속 참치김밥'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내용물이 너무 부실하다. 하긴 1,200원짜리 김밥에 너무 기대가 큰 걸까? 하지만 '실속'이라는 말을 붙이지나 말지. 참으로 실속 없는 김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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