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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뚤어질테다(1)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서당(삼화실)-하동

by 바람

지리산둘레길 홈페이지에 가 보면 구간에 숫자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작점과 끝점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런데 초창기에 사람들은 보통 주천-운봉을 1코스로 불렀다. 그래서 운봉-인월을 2코스로, 가장 유명한 인월-금계 구간을 3코스로 부르며 이후 구간에도 숫자를 붙이기도 하였다. 이렇게 숫자를 붙이면 완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카운트가 되어 편리한 점이 있지만 나중에 복잡해지는 부분이 생긴다. 이번에 걷게 될 서당-하동 구간, 목아재-당재 구간(지금 이 구간은 아예 지리산둘레길에서 빠졌음), 오미-방광 구간과 오미-난동 구간이 그렇다. 지리산 주변을 도는 둘레길이 아니라 살짝 삐쳐나가는 구간이라서 여기는 번호 붙이기가 애매하다. 그래서 한때는 둘레길의 본선에서 벗어난 지선으로 12-1코스라는 식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지리산둘레길전체2.jpg 지리산둘레길의 대략적인 그림

지리산둘레길의 전체 구간을 그려 보았다. 정밀하지는 않다. 파란색이 지리산둘레길인데 어떤 사람은 하트 모양 같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 지도 같다고 한다. 어떤 모양으로 보는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고 중요한 것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저 위쪽 붉은 점이 인월이다. 저기서 시작해서 오른쪽 산청 방면을 지나 하동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제 절반 정도 걸었다. 벌써 반이나 걸었다. 하지만 아직 반이나 남았다.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방금 설명한 지선 구간은 초록색으로 표시하였다. 하동읍으로 향하는 아래쪽 부분과 구례군을 지나는 왼쪽 부분에 있다. 이번에 걷는 서당-하동 구간은 하트 모양으로 보면 심장의 가장 아래 부분이고 아프리카 지도로 보면 희망봉쯤 될 것이다.



지리산둘레길삼화실하동대축.jpg 삼화실-대축, 하동읍-서당 구간

지리산둘레길의 공식적인 구간대로 걷는다면 삼화실-대축(12코스) 구간을 걷고, 하동읍-서당(12-1 혹은 13코스) 구간을 걸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번에 삐뚤어지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너무 모범생처럼 걸었다. 이제는 삐뚤어질 테다. 삼화실에서 서당을 거쳐 하동읍을 향해 걸을 것이다. 내 맘대로 걷겠다.


삼화실에서 서당까지는 3.5킬로인데 오르락 내리락의 난이도가 좀 있다. 여기까지 나는 2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서당에서 하동까지는 7킬로인데 난이도는 '하'로 보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나는 4시간 정도 걸렸다. 즉, 삼화실에서 서당까지 총 10.5킬로를 약 6시간 정도 걸었다. 이는 작정하고 삐뚤어지게 놀면서 걸은 결과다. 고백하건대 친구와 함께 막걸리를 얼려갔고 쉴 수 있는 정자에서는 모두 쉬었고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에서는 모두 신발을 벗었다.


이번에도 시작 전에 정보를 살펴보자.

교통편은 삼화실과 서당에는 버스가 하루 서너 대 지나므로 시간을 잘 맞추거나 택시를 불러야 한다. 대부분의 버스는 하동읍을 향한다. 하동읍은 시외버스터미널도 있는 큰 곳이다.

먹거리는 하동읍으로 올 때까지 마땅히 먹을 곳이 없다. 가게도 거의 없으므로 물과 점심을 잘 챙겨야 한다.

숙소는 삼화실에는 에코하우스가 있고 하동읍에는 여러 숙박시설이 있다. 서당마을 회관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는데 확인이 필요하다. 작은 마을의 숙박시설은 그때그때 상황이 달라지므로 직접 전화해서 확인하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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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화실 출발지와 이정마을

삼화실의 에코하우스 앞에서 출발한다. 넓은 주차장이 있으므로 차를 편히 세워놓고 가도 좋다. 바로 이어진 마을길을 따라 이정마을을 지난다. 이정마을에는 아주 멋진 느티나무들이 있다. 이 마을의 당산나무 두 그루가 사이좋게 서 있다. 할머니 나무와 할아버지 나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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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시작

마을을 지나 작은 도로를 건너고 다리도 건넌다. 그러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처음에는 포장된 길을 올라가지만 길은 어느새 산길로 바뀐다. 기왕이면 흙길이 좋다. 숲이 그 사이 더 푸르러졌다. 그만큼 녹음도 깊어지고 있다. 이제 봄을 지나 여름을 향하고 있음이 색과 냄새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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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와 엉겅퀴

이번에도 숲길에서 많은 친구들을 만난다. 나무를 타고 오르는 담쟁이를 보았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어떨까? 간지럽지 않을까? 이들은 서로 공생하는 걸까? 쓸데없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엉겅퀴도 보았다. 엉겅퀴의 색깔이 이렇게 강렬한지 처음 알았다. 색이 강렬한 것도 진화의 산물이라는데 얘가 이런 색깔을 가지게 된 것도 나름 이유가 있을 것이다. 눈에 잘 띄어야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오르막이 길게 이어진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해서 길이 험한 것은 아니다. 그냥 숲 속 오솔길을 따라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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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길과 좁은 길

숲에서 벗어나 잠시 임도를 걷는다. 그러다가 이내 다시 오솔길이 펼쳐진다. 넓은 길과 좁은 길이 번갈아 나온다. 넓지만 포장되어 있는 길, 좁지만 흙으로 이루어진 길. 어느 쪽이 더 좋을까? 나는 좁은 흙길이 더 좋다. 흙길은 폭신폭신하고 나무와 풀들이 우거져서 더 예쁘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걷는다면 넓은 길도 좋다. 좁은 길은 오롯이 혼자 걷기 좋고 넓은 길은 친구와 나란히 걸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좋다. 기왕이면 넓은 길이 흙길이고 나무가 우거져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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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 안내문과 개님

깊은 산골에 이게 무슨 일일까? 고사리를 채취하여 운반하는 작은 시설이 있다. 그리고 그 근방으로 엄청 많은 개들이 있다. 어떤 개님은 묶어두지 않아서 좀 무서웠다. 보아하니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기르는 것 같지는 않고 고사리를 채취하는 분들이 기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개의 목줄을 묶어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둘러 지나가서 별일은 없었지만 이 구간을 지날 때는 조심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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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마을과 막걸리

어느새 고개를 넘어 서당마을에 도착했다. 서당마을 삼거리 쉼터에 앉아서 막걸리와 샌드위치를 먹는다. 참으로 어색한 조합이다. 막걸리는 호기롭게 얼려왔으나 안주거리는 사지 못했다. 결국 점심으로 산 샌드위치가 안주가 되어 준다. 잔도 없어서 샌드위치 뚜껑으로 대신한다. 이 오묘한 조합도 언젠가는 하나의 추억이 되리라.

그리고 벅수를 보면 하동 쪽으로 뻗은 팔이 초록색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벅수는 붉은색(순방향)과 검은색(역방향)으로 길을 안내하는데 초록색은 지선 방향을 의미한다. 이 사진에서 붉은색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대축마을까지 가는 순방향이다. 그리고 초록 색이 가리키는 방향이 하동읍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하동읍을 향한다.



IMG_7579.JPG 모내기를 한 논

모내기를 한 논 사이를 지난다. 구불구불하지만 정갈하게 심어진 모의 모습이 가히 예술적이다. 가만히 보면 논두렁의 곡선에 따라 모가 심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변 환경에 맞추어 모를 심은 농부의 손길이 섬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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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꽃과 모르는 꽃

나의 식물 지식수준은 유치원생과 같다. 장미는 한눈에 알아보겠는데 길쭉하게 생긴 저 아이는 무슨 식물인지 모르겠다. 꽃검색을 시도했지만 길쭉한 모양이 독특해서 잡히지 않는다. 미안하다.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 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지 못하는구나. 아쉬운 대로 '길쭉이'라고 불러준다. 이제 이름을 불러주었으니 나에게로 와서 잊히지 않는 하나의 추억이 되어 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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