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송정-오미
이번에 걷게 될 구간은 송정-오미 구간인데 총 10.4킬로, 5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난이도 '상'구간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길이가 좀 길어서 시간이 오래 걸릴 뿐, 높낮이로 인한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송정에서 출발하여 숲길로 5킬로 정도 걷게 되지만 그 길이 아주 험하지 않아서 걸을 만하다. 그 후로는 계속해서 임도를 따라 걸어서 슬슬 걸을만하다.
나의 경우 2015년에는 7월에 송정에서 구례노인요양원까지 4시간, 8월에 구례노인요양원에서 오미까지 2시간 정도 걸렸으므로 전체를 6시간 만에 걸은 셈이다. 그런데 2022년 10월에는 송정에서 오미까지 7시간이 걸렸다. 더 오래 걸린 이유는 중간에 너무 예쁜 집이 있어서 감탄하면서 지나가려니까 마음씨 좋은 주인분께서 들어와 차 마시고 가라고 권하셔서 냉큼 들어가 집 구경, 경치 구경도 하고 차에다가 과일까지도 얻어먹었기 때문이다. 정말 따뜻한 경험이었다.
송정마을과 오미마을은 버스로 직접 연결되지는 않지만 조금만 이동하여 큰 도로로 나가면 연결되는 버스가 있다. 송정에서는 30분 정도, 오미에서는 10분 정도 걸어 내려오면 19번 국도가 나온다. 이 도로에 피아골과 구례를 연결하는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화개장터 가는 버스가 두 시간에 한 대 지나가므로 시간을 잘 맞추면 오미에서 송정으로, 송정에서 오미로 이동이 가능하다. 그 밖에도 오미마을에서 구례 가는 버스가 2~3시간에 한 대 정도 있다.
그리고 먹거리는 송정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미에는 식당이 한두 군데 있다. 그리고 오미에 도착하기 직전 하죽마을에 구멍가게가 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므로 점심과 물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숙소는 송정과 오미에 민박, 펜션 등 있다.
송정마을에서 출발할 때 다소 당황할 수 있다. 벅수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려보면 도로만 보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사진을 자세히 보면 도로에서 숲 속으로 아주 작은 진입로가 있다. 그 길이 둘레길이다. 얼핏 보면 저기에 무슨 길이 있으랴 싶지만 분명 등산로가 있으므로 길을 건너가 보자. 근데 하필 저길 찍은 사진이 없어서 고프로로 영상 촬영한 것을 캡처했더니 화질이 구리다.
숲 속길로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많이 가파르지는 않다. 오솔길을 따라 나무 구경, 풀 구경, 꽃구경을 하면서 걷다 보면 어느새 의승재에 도착하게 된다. 재를 넘어간다고는 하지만 얕은 재라서 숨이 깔딱거릴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의승재에는 의자가 있어서 쉬어갈 수 있다.
의승재를 넘어가면 범상치 않은 숲이 펼쳐진다. 깊은 숲 속의 고즈넉한 풍경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보고 있으려니까 무슨 비밀의 숲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는 신선 세계일까? 인간계에 있는 내가 잠깐 동안 햇살이 장막을 걷어낸 신선 세계를 엿보고 있는 걸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숲의 적막을 느껴본다. 수종은 편백나무가 주류를 이루지만 간간히 소나무도 섞여 있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너무 멋진 나무가 많아서 발걸음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제일 멋진 나무를 손에 꼽자면 이 나무다. 울퉁불퉁한 껍질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높게 뻗은 줄기와 가지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마치 근사하게 늙은 노신사를 보는 듯하다. 나도 이런 모습으로 늙어갔으면 좋겠다. 울퉁불퉁 거친 세월의 흔적을 두르고 있으면서 고고한 품성을 지닌 사람으로 늙고 싶다.
숲 속에서는 이런 계곡을 지나게 된다. 처음 만나는 계곡이 송정계곡, 그다음 만나는 계곡이 원송계곡이란다. 여기는 정유재란 때 의병들이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순절하여 그 피가 계곡물을 이루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아래쪽에 그 뜻을 기리는 석주관 칠의사묘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깊은 곳까지 왜군이 쳐들어 왔다고 하니 좀 놀랍다. 섬진강을 따라 올라온 것인가? 일본은 오래전부터 호시탐탐 우리나라를 노렸다. 아마도 자기들 땅보다 살기 좋아 보여서 빼앗고 싶었나 보다. 침략을 일삼았던 일본과 그 일본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싫다. 숲길을 지나 계곡을 건너 걷다 보면 저 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이번에도 섬진강을 끼고 산길을 걸어가는 구간이 있다.
숲 속 오솔길이 계속되어 살짝 힘들다. 그즈음 언덕 위에 정자가 나타난다. 나의 징크스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정자나 의자가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걷다가 힘들어서 대충 땅바닥이나 바위에 앉아서 쉬고 나서 다시 걷기 시작하면 조금 있다가 바로 정자나 쉼터가 나타난다. 이 징크스는 처음 걷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문득, 둘레길을 다시 걸으면서 쉼터나 정자, 의자가 있는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 같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까. 아닌가? 나 같은 사람은 없을까? 나처럼 느리고 자주 쉬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그런 지도를 만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좀 생각해 봐야겠다.
숲길을 가다가 갑자기 이런 다리를 만나서 좀 당황했다. 숲 한가운데에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곳에 오작교 같은 다리라니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도 이 다리가 있으니까 얕은 계곡을 수월하게 건넌다. 다리를 지나서 얼마 가지 않아 시야가 트이면서 목책길이 나타난다. 사유지로 보이는 과수원으로 진입하게 된다. 둘레길은 마을을 잇는 길이고 때로는 사유지를 관통하거나 그 옆을 지나게 된다. 길을 허락해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과수원을 지나 파도마을로 접어들면서 좀 놀라게 된다. 길가에 묘지가 엄청 많다. 집 사이에 묘지가 있는 게 아니라 묘지들 사이로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본격적인 파도마을은 좀 더 가야 있지만 그래도 길가에 집들이 많은데 묘지는 더 많다. 보니까 남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르고 북쪽으로는 지리산이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인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향이니 풍수지리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이 지역은 명당으로 보인다. 사실 여기를 지날 때쯤 지리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걸으면서 여기가 좋을까, 여기에 집을 지으면 어떨까, 여기 살면 어떨까 눈여겨보면서 걸었다. 그중 1순위가 바로 여기 파도마을이었는데 묘지들을 보고 망설여졌다. 묘지만 빼면 여기가 제일 살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