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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 May 16. 2023

명당을 찾아서(2)

내 사랑 지리산둘레길 송정-오미

구례 노인요양원 입구 쉼터와 오봉 전망대

묘지가 많은 구간을 지나면 구례노인요양원 입구의 쉼터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스탬프 찍은 곳이 있다. 둘레길은 파도마을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요양원의 옆을 지나 마을 위쪽의 임도로 이어진다. 약 100미터 정도 경사가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길 끝에 멋진 전망대가 자리하고 있다. 둘레길 홈페이지에서는 이 전망대를 오봉 전망대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실 스탬프 찍은 곳과 오봉 전망대는 2015년에 걸을 때는 없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저것 변화의 흔적이 느껴진다. 




파도마을과 구만들

하지만 변함없는 것도 있으니 그것은 이 풍경이다. 바로 앞의 마을이 파도마을이고 그 앞의 너른 들이 '구만들'이다. 그리고 구만들 너머로 보이는 산이 오봉산이다. 여기는 선녀가 하늘로 오르다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금환락지의 명당이라고 둘레길 홈페이지에 소개되어 있다. 금가락지 모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뒤로 늠름한 산이 둘러싸고 있고 멀리 강이 흐르고 농사지을 너른 들이 있으니 확실히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로와 모노레일

길은 잘 닦여진 임도로 길게 이어진다. 신기한 것은 이 긴 길에 수로가 잘 놓여 있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보이는 과수원들과 밭들, 아래쪽의 논들에 물을 대기 위한 수로인가 보다. 그리고 길가에서 신기한 것도 보았다. 사람이 타기에는 매우 위험해 보이는 모노레일이다. 아마도 농작물들을 아래쪽으로 나르기 위한 운송 수단인 듯하다. 한참 농작물들을 수확하는 철에 여기를 지난다면 이 장치가 열일하는 것을 구경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번 타보고 싶다는 생각이 살짝 든다. 




구만들 풍경과 꽃

임도는 산 능선을 따라 이어져서 걷기 편하고 전망도 좋다. 멀리 보이는 풍경도 구경하고 또 길가에 심어진 꽃도 구경한다. 2022년에 이 길을 걸으면서 좀 놀란 것은 대규모의 전원주택단지가 많이 들어섰다는 점이다. 2015년에 걸었을 때는 드문드문 개인 주택이 있어서 여기서 살면 참 한적하고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여기저기에 택지가 개발되어 이제 막 터를 닦는 곳도 있고 이미 주택단지가 형성되어 있는 곳도 보게 된다. 아주 커다랗게 쓰인 부동산 전화번호도 보았다. 이 깊은 산속에 커다란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문수저수지와 내죽마을, 하죽마을

길은 문수저수지로 이어진다. 굉장히 넓은 저수지인데 둘레길은 저수지를 만나면 좌회전하여 아래로 내려간다. 이제 목적지에 거의 다 온 것이다.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저수지에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이 시원시원하다. 멀리 보이는 들판이 아까 본 '구만들'이고 바로 앞에 마을이 내죽마을과 하죽마을이다. '죽'이 들어가서 대나무와 관련된 마을인가 보다 짐작했는데 맞단다. 문수저수지가 들어서기 전에 이 일대는 대나무가 울창했다고 한다. 




2015년 8월과 2022년 10월의 문수 저수지 제방 풍경

저수지 아래쪽으로 길은 이어지고 본격적인 마을길이 시작되기 전에 논을 옆에 끼고 걷게 된다. 여름에는 푸른 모들이 자라는 모습을, 가을에는 노란빛으로 익어가는 벼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멀리 저수지 제방이 보인다. 문득 저 제방이 무너지면 이 마을들은 큰일 나겠다는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미국영화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 신이 내려와서 어떤 남자에게 노아의 방주 만들라고 괴롭히고, 그래서 어찌어찌해서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놀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오는데 금방 그쳐서 더 놀림을 받는다. 그런데 그 마을 위의 댐이 부실공사로 무너지고 노아의 방주는 워싱턴 국회의사당으로 들이닥친다. 아, 영화 스포를 너무 많이 했다. 어쨌든 그 영화가 딱 생각나는 장소다. 그야말로 쓸데없는 상상력이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상상력이길 바란다.




하죽마을과 수로 빨래터

내죽마을과 하죽마을을 지나면서 신기하게 생각한 것은 마을을 따라 이어지는 수로다. 도로와 집 사이에 수로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빨래터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아마도 상하수도 시설이 들어오기 전에는 마을 아낙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빨래를 했을 것 같다. 흐르는 물에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수많은 시름들도 함께 흘려보냈겠지? 지금은 소소한 꽃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오미마을의 온조루

하죽마을을 지나면 바로 오미마을이다. 오미마을에는 온조루가 있다. 온조루는 조선 영조 때 유이주라는 사람이 지은 대저택이다. 아까부터 소개했던 금환락지라는 명당자리에 지어진 집인데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양반집의 건축양식을 보여준다고 한다. 내가 온조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십여 년 전인데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아, 온조루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온조루 주변이 달라졌다는 말이다. 전에는 온조루만 있었는데 지금은 그 주변에 펜션, 한옥민박 등이 들어서면서 관광지가 되었다. 하지만 온조루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이렇게 지리산둘레길 송정-오미 구간(16코스)을 걸었다. 여기도 두 번 걸었다. 이제 점점 두 번 이상 걸은 구간이 많아지고 있다. 지금도 나는 훌쩍 지리산으로 떠나곤 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살고 싶은 파도마을을 지나는 송정-오미 구간은 구례읍에서 가깝고 많은 관광지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더욱 매력적이다. 이 구간은 무슨무슨 명당이라는 소개가 있지만 내가 생각할 때 명당은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좋아하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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