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갈린 운명

안나푸르나 트레킹 8편

by 바람

'데우랄리'에서 아침 8시쯤 출발한다. 오늘 드디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까지 간다. 베이스캠프에서 1박하기도 하는 경우도 있고 거기를 찍고 다시 내려오기도 한다. 나는 1박을 할 것이다. 이번 트레킹의 목적지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인데 그냥 내려오는 것은 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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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향해 출발

날이 밝았지만 산이 워낙 깊어서 여기는 다시 새벽이 된 것 같다. 해가 비치는가 아닌가에 따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여기 그늘에는 저번에 온 눈이 안 녹거나 서리가 내린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한동안 눈이 안와서 애써 가지고 간 아이젠과 스패츠를 써먹지도 못했다. 걷기 편한 것은 좋지만 눈쌓인 풍경을 못봐서 아쉽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내가 내려간 직후 폭설이 내렸단다.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로 돌아갔을 때, 대학 후배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거기에는 눈덮힌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가 찍혀있었다. 그리고 후배는 지금 그곳에 있다고 했다. 내가 '촘롱'에서 '고레파니' 방향으로 내려갈 때, 후배는 '지누난다' 방향에서 '촘롱'을 향해 올라오는 바람에 우리는 길이 엇갈려 만나지 못한 것이다. 한동안 연락이 뜸하여 우리는 서로 상대방이 히말라야에 온 줄 모르고 있었다. 후배는 눈쌓인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가 가슴 벅차게 멋져서, 평소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사진을 보내준 것이다. 이런 우연이 있다니, 정말 신기하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엇갈린 운명인건가?




사진 533.jpg 계곡과 함께 올라가는 중

만년설이 녹은 물이 계속 흐른다. 계곡물도 함께 고도를 높이고 있다. 해는 높이 떠서 이제 이곳까지 비추려 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마안이 사진을 계속 찍는 나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가는 구간은 어제 보았듯이 태양이 비추면 눈사태가 날 수 있어서 이제부터는 좀 서둘러야 한다고, 그래서 잠시 동안은 카메라를 넣어두고 걷기에 집중하라고 한다.

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코스 중에서 가장 짧지만 걷기는 가장 힘든 구간이다. 하긴 '데우랄리'에서 이미 해발 3200미터를 넘었고 중간에 쉬는 장소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가 3700미터, 목적지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4100미터이다. 따라서 걸어가는 킬로수로는 가장 짧지만 고도를 많이 올리기 때문에 시간은 가장 오래 걸리는 구간이다.

고산증세가 올 수 있으므로 마안이 수시로 머리가 아픈지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가끔 머리가 아프다가 괜챦아지는 정도일 뿐, 그 외에는 다 괜챦다. 내가 부모님께 감사하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가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신 것이다. 어지간한 환경에서도 먹기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배설(^^)도 잘 한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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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빛에 따라 다른 느낌의 길

걷기에 한참 집중하다가 보니 이제 위험 구간은 지나고 약간의 평지 구간이 나온다. 황량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가 경이롭다. 해가 비치는 곳과 아닌 곳은 극명한 차이가 있는데, 여기서 본 경치들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사진으로 담기에도 한계가 있다. 아주 멀리 눈덮힌 설산이 있고, 그 앞으로 회색빛을 띄고 있는 산들이 첩첩히 보인다. 가깝게는 갈색의 산들이 있고 황량한 들판이 펼쳐진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의 뒤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진다. 너무 아름답다. 너무 아름답다.




사진 589.jpg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만년설이 녹은 물이 여기저기 흘러내리다가 얼었다가 한다. 걷고 또 걷는다. 하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아까보다 더 올라온거겠지? 앗! 드디어 저 멀리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가 보인다. 줄여서 MBC라고 부르는 곳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여기서 저기까지 가는데도 시간이 한참 걸렸다... 산.소.가... 부.족.해... 헉...헉... 서두르면 안된다. 천천히 나의 페이스대로 걸어야 한다.


아, 그리고 저번에 걱정했던 교회 단체객들은 무사하단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를 찍고 내려오는 그들을 만났다. 그들 중 제일 마지막에 올라가던 사람들이 눈사태를 보고 뛰어서 간신히 피했단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 뒤에 오던 한국에서 온 젊은 연인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헬기에 그분들이 타고 있던 걸까? 동양인이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에고.... 그래도 교회 단체객들의 꼬맹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다.




사진 599.jpg MBC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그리하여 마침내 MBC에 도착을 했다. 도착하여 고개를 돌리는 순간, 범상치 않은 설산이 보인다. 아, 저기가 안나푸르나구나! 저기를 목표로 하여 올라온 것이란 말이지.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생긴다. 아직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까지 한참 더 가야 하는데 마음을 벌써 주인공을 만난 느낌이다.

지금은 안나푸르나의 일부만 보이지만 베이스 캠프까지 가면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베이스 캠프를 감싸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안나푸르나'라고만 알고 있지만 안나푸르나는 히말라야 산맥의 봉우리군들 중 하나이다.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는 총 4개이고 그 외에 몇 개의 위성봉우리를 더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진 605.jpg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올려다 본 모습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서 점심밥을 시켜 놓고 잠시 숨을 돌린다. 그때 올려다 본 마차푸차레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다. 비교해 보면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능선들이 부드러운 안나푸르나와 날카롭고 뾰족한 마차푸차레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바로 옆에 있는데 이렇게 대조적인 모습을 갖게 된 것이 신기하다.




사진 602.jpg 임시방편으로 동여맨 등산화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내 등산화의 바닥창이 너덜너덜 끝부분을 남기고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여기는 험한 산중이라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끈으로 동여맸다. 이 상태로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드릴 뿐이다. 중간에 어떤 포터가 자신의 등산화와 같은 상태라고 비교했는데 정말 똑같은 상황이었다. 하.하.하. 결국 이 등산화는 포카라로 돌아와서 숙소로 묵은 '놀이터'에 기증하였다. 이들이 자선단체로 보내서 수선하여 산간지역 사람들에게 기증할 수 있다고 하길래 여기에 맡겼다. 나의 지리산종주, 설악산공룡능선종주 등 수많은 대한민국의 산하를 누볐던 등산화와 그렇게 작별을 하였다.


나의 등산화를 위한 헌시.

아.. 그는 갔습니다.

그는 훌륭한 등산화였습니다.

그는 믿을 수 없을만큼 느린 주인을 닮아 아주 서서히 서서히 낡아갔습니다.

그는 여름 지리산에서 진흙탕길 속에서도 주인을 지켰으며, 가을 설악산의 단풍을 밟으며 주인과 함께 즐겼습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주인과 함께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누볐습니다.

그는 머나먼 타국, 그것도 히말라야라는 거대한 산맥에서, 안나푸르나를 향해 난 길을 깨치며 걸어갔습니다.

그는 마지막 숨을 아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주인과 함께 올랐습니다.

장엄한 안나푸르나의 일몰과 일출을 맞이하였고, 별이 떨어지는 안나푸르나의 밤도 함께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는 영원히 안나푸르나의 품에 머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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