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헤어살롱을 찾았다.
미리 원하는 커트 스타일 사진들을 찾아 핸드폰에 저장해 갔으면서도 "어떻게 해드릴까요?"라는 헤어디자이너의 질문은 순간 날 경직 시켰다.
서비스를 받는 손님으로서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 게 너무 당연하지만 - 그리고 헤어디자이너 측에서도 명확하게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 게 한결 편하겠지만 - 난 매번 이 질문에 얼어버린다.
혹시나 내게 어울리지 않은 스타일을 선택 한건 아닌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닌지, 별의별 걱정에 말문이 막히는 거다. 당당하게 '이렇게 해주세요'란 말을 못 하고 '이런 건 어떨까.... 요?'라고 헤어드레서의 동의를 구하는 나의 소심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건 잘못된 선택입니다'란 대답을 기대하듯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을 조금 더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나'란 사람의 취향과 의견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근본적인 신뢰가 없어서이며, 내 생각보다는 무조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맞을 거란 전제를 깔고 가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까지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렸을 땐 단순히 내가 융통성 있고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착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점점 커리어가 쌓여가면서 그건 착함과 다른 문제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됐다. 특히 팀의 방향을 정하고 사람들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의 자리로 올라가면서 나의 이런 소극적인 면은 업무에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속으론 A의 방향이 맞는 것 같으면서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맞춰 B와 C의 방향으로 따라가다가 결국엔 내가 처음부터 생각한 방향이 맞았다는 걸 깨달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부터 내 판단을 믿었다면 되었을 것을, 괜히 나의 소심함으로 팀 전체를 먼 길을 돌아오게 했다. 내가 내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아 결국 내가 이끄는 팀은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고, 난 그 일을 또 뒷감당하느라 시간과 힘을 빼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난 매번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왜 난 항상 내가 다른 사람들 보다 덜 알고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단정 지어 버리는 걸까? 왜 난 다른 사람은 내 말을 절대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렸을 때부터 깊게 자리 잡은 낮은 자존감이, 직장에서도 헤어살롱에서도 내 발목을 덜컥 잡고 있었다. 다음번에 머리 하러 갈 땐 조금 더 당당하게 말해보련다. '이렇게 머리 해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