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1주년을 돌아보며
퇴사한 지 거의 딱 1년이 다돼 간다. 8월 6일. 공식적인 근무 마지막 일이었다. 사실 난 그 해 초 아주 어이없게 사기를 당해 아주 큰돈을 잃은 상태였고, 그래서 퇴사 결정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아무 대책 없이 퇴사했던 나의 지난 1년은 어땠을까?
삶을 계획하는 스케일이 달라졌다
내 시간의 대부분을 좌지우지하던 직장이란 틀이 사라지니 그 시간의 주도권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철저하게 나에게로 돌아왔다. 직장에 다닐 때 나의 목표는 주어진 일에 큰 성과를 내고, 진급을 하고, 연봉을 올리는 것이었다. 인생의 목표도 이게 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의 이런 목표들을 담고 있었던 '직장'이란 틀이 사라졌더니 인생을 계획하는 스케일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진급할 수 있는 '다음 직급'처럼 구체적인 목표는 퇴사와 함께 사라져 버렸지만 그 보다 더 방대하고 큰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여태 쌓아온 경력과 강점은 무엇이며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자원은 무엇인가? 나의 시간은 지금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가?
이미 짜인 루틴에 맞추어 쳇바퀴처럼 굴러가던 일상이 멈추자 난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질 수 있게 됐다.
생각지도 않은 일을 하게 됐다
이런 질문들 끝에 다다른 결론은 '책을 쓰자'였다. '그다음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란 질문에 대한 답은 '여태 해오던 일과는 다른 일'이었고, 다른 일로 전환하기 전에 지난 15년간 담아왔던 업종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이렇게 굵직한 목표는 생겼는데 책을 쓰기 위해 필요한 '글쓰기' 실력이 너무 모자란다고 느껴서 시작한 게 아직까지 이어나가고 있는 '매일 글쓰기 챌린지'다. 매일 글쓰기는 '인생을 바꾸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무 큰 영향을 주었는데, 퇴사하지 않았으면 절대 발견할 수 없었을 행위다.
지갑이 정신을 차렸다
회사 다닐 땐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덜컥 덜컥 잘도 사댔다. 소유욕이 발동해서기도 하지만 가격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대로 살 수 있는 형편이 된다는 게 그냥 좋았던 것 같다. 퇴사하니 따박따박 매달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졌고 몇 년간 모아둔 적금도 다 날아갔으니 어쩔 수 없이 한 푼 두 푼 아끼는 생활을 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크게 깨달은 게 있다. 마구 물건을 사들이지 않아도 난 행복할 수 있구나. 비싼 옷, 예쁜 구두, 핸드백들은 생각보다 내 행복지수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히려 알뜰살뜰하게 사는 게 더 재미났고, 이미 가지고 있는 물건을 활용도 높게 사용하니 보람찼다.
삶의 우선순위를 발견했다
퇴사하기 전 난 워커홀릭이었다. 하는 일마다 잘 해냈고, 거기서 오는 성취감을 열심히도 쫒았다. 하지만 퇴사를 하고 짝꿍과 강아지 뿌뿌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늘게 됐고, 나만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보다 파트너와 함께 손잡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훨씬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다.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생각보다 퇴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참 많다. 꿈은 꾸지만 막상 퇴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항상 같다. 다음 직장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퇴사는 너무 무모한 것 같아서. 하지만 나의 무모한 퇴사 결정은 아무 대책 없는 퇴사였기 때문에 내 인생의 방향성을 재정비하고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여태까지 계속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해왔더라면, 난 옛날 사람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한 채 한 방향대로만 나가고 있지 않았을까. 정해진 길이 없는 황무지에 나가야 새로운 개척이 가능하 듯, 방향성 없는 무모한 퇴사, 정말 해볼 만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