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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ndsbird Aug 06. 2024

과감함과 무모함의 한 끗 차이

난 가끔 큰 결정을 '훅' 할 때가 있다. 빠르게, 쉽게 결정을 내린다는 말이 아니라 큰 리스크가 따르는 결정을 과감하게 내린다는 얘기다. 


무언가에 꽂히면 앞뒤 안 가리고 돌진하는 성격 때문인지, 나도 모르는 '어떻게는 잘 되겠지'란 낙천적인 구석이 있는 건지, 위험수용능력이 높은 건지.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툭툭 하곤 했다. 영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는 혼자 한국에 가 동네에 있는 모든 식당과 영어 학원을 방문해 자기소개서를 돌려 알바 자리를 만들어 냈고, 런던 시티 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엔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아무 대책 없이 홍콩으로 떴다. 


떠난 이유는 이때 아니면 언제 영국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볼까란 생각에서였다. 중국어도 제대로 배우고 싶었고 홍콩이면 영어로 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 할 것 같았다. 오라는 직장도 없이 무작정 홍콩으로 이사를 간다는 게 많이 망설여졌지만 새로운 장소, 문화 속에 날 담고 싶었다. 갈까 말까 한참 고민을 할 때쯤, 영국에서 알던 친구 몇 명이 홍콩으로 발령 났는데, 한 명도 아닌 여러 명의 지인이 각각 개별적인 이유로 홍콩에 간다는 건 하늘이 주신 사인 같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미친 짓이었고 무모한 짓이었다. 몇 개월이면 일자리가 구해질 줄 알았는데 홍콩에서 취직한다는 건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다. 물가는 살인적이고 수입은 없고.


리서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막연히 '홍콩은 중국령이니 물가가 싸다'라고 생각했는데 도착해 보니 생활비는 영국 못지않았고 광둥어를 하지 못하는 언론인으로서 내가 취직할 수 있는 언론사는 몇 개 되지 않았다. 영국에서 독학하던 만다린어를 사용하고 싶어 홍콩을 택했지만(만다린어를 쓰는 중국 본토 지역은 언론인이 활동하기엔 위험한 지역이라 선택지에서 제외함) 어버버거리는 내게 팩팩 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현지인들에게 주늑들어 난 영어만 사용하기 시작했다.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너무 외로웠고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건가 싶었다. 


거의 7개월 동안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 마음고생 꽤나 했는데, 다행히 비자가 만료되기 한 달 전에 취직이 돼 홍콩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 당시 내 은행 잔고엔 달랑 1000파운드(한화 170만 원) 정도가 남아 있었다. 


홍콩으로 무작정 떠나기로 한 건 참으로 무모한 결정이었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던 난 영국에선 절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숫기 없고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라면 죽도록 기피했던 소극적인 나였지만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들이대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프리랜서 일거리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프리랜서로 일하던 회사에 정규직으로 취직을 하게 되며 생활이 안정됐다.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니 자연스럽게 친구도 많아졌고 홍콩 생활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왔을 때 난 사람 만나고 파티 가기 좋아하는 사교적인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살기 위한 절실함에서 빚어진 배움과 경험은 그 어떤 책이나 명강의에서도 배울 수 없는 것들이었다. 맨땅에 헤딩해서 한 번 살아남아 본 경험은 무슨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란 깊은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이 자신감은 아직도 날 지탱해 준다. 


화두를 조금 돌려, 나의 홍콩 생활이 실패로 끝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취직이 되지 않았고, 가진 돈을 다 탕진하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왔다면? 그렇다면 나의 홍콩행은 단순한 '무모한 결정'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운 좋게도 좋은 결과가 있었기에 그때의 선택은 '용감했다'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이미 과거의 결정의 열매가 눈에 보였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고, 결정을 내릴 당시엔 '과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판단이 안 설 때가 많다. 이럴 땐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려야 할까? 


여기에 대한 생각은 다음 글에서 풀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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