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탁아동 'O' 이야기 - 5편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라길래 저녁은 크림 파스타를 한 접시 가득 차려주었다.
맛있다며 열심히 먹다가 10분도 안돼서 배부르다며 포크를 내려놓는다. 아직 접시엔 파스타가 잔뜩 남아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 생각 없이 어른 분량으로 1인분을 다섯 살 배기 아이에게 먹으라고 주었던 거다.
아이가 그만 먹겠다며 내려놓은 포크도 아이가 쥐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성인용 스텐포크다. 아이가 포크질을 할 때마다 손에서 포크가 휘청거린다.
아이가 밥을 다 먹고 싱크대로 가져오던 사기그릇이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Sorry!"
산산조각이 난 그릇 앞에 서서 아이가 미안해했지만 더 미안한 건 나였다.
아이가 우리집에 들어올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지만 정작 아이가 오니 집엔 아이를 위한 용품이 하나도 없었다. 플라스틱 식기구도, 색연필도, 장난감이나 그림책도.
아이가 쉬야를 하고 싶어 할 때마다 매번 아이를 들어 변기에 올려줘야 한다. 아이가 혼자 앉기엔 변기는 너무 높다. 작은 몸뚱아리에 비해 너무 큰 변기에 앉아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변기 안으로 풍덩 빠져버릴 것만 같아 불안하다.
나와 함께 등교하는 첫날엔 30분이면 나갈 준비가 다 끝날 줄 알았다. 내가 나갈 준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분이니까.
깨워서 세수시키고 시리얼을 내줬는데, 수다 떤다고 바빠 아침을 도저히 먹지 않는다. 잔소리해 가며 겨우 다 먹이고 교복 입으라고 시키니 나보고 입혀달라고 칭얼거린다. 교복을 입히고 양말을 신기려니 깔깔거리며 다른 방으로 도망가 버린다. 어째 어째 준비 다 해서 현관문을 나섰다. 급해 죽겠는데 아이는 one, two, three 천천히 숫자를 세가며 계단을 하나씩 내려온다. 요새 숫자 세는데 재미가 들렸는지 뭐든 보면 1,2,3을 해주어야 한다.
아이니까 너무 당연한 건데, 이런 것들을 미리 생각해두지 못한 내가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부랴부랴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도 몇 권 빌려오고, 파스텔톤의 플라스틱 그릇도 구매했다.
아이 키우는데 너무 초보라, 일상이 우당탕탕이다.
*이 글은 5살짜리 영국 소녀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연재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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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와의 첫 만남
2. O와의 첫 만남 (2)
3.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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