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탁아동 'O' 이야기 - 6편
우리집에 온 지 며칠이 지나자 O는 엄마와 떨어져 나와 함께 지내는 생활이 익숙해진 듯했다.
아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고 한시도 날 가만두지 않았다.
내 안경을 끼고 선생님 흉내를 내며 ‘학생’인 날 혼내기도 하고, 좀비 행세를 하며 잡기 놀이 하는 것도 좋아했다.
카메라를 들여대면 렌즈를 관능적으로 쳐다보며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집에서 뭘 보고 자랐는지 나이에 맞지 않게 모델의 섹시한 눈빛을 재현하는 게 살짜쿵 어이없으면서도 너무 정확하게 흉내 내는 게 귀여웠다. 멋들어지게 힙합춤을 추기도 하고 같이 요가 하자며 부엌에서 이 동작 저 동작을 시키기도 했다.
밝고 명랑한 O였지만 드문드문 아이의 어두운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우리집에 온 지 둘째 날 샤워기를 틀자마자 아이는 꺅하고 비명을 질렀다. 제발 꺼달라고, 무섭다고 내게 엉겨 안기길래 얼른 샤워기를 꺼주고 대신 이불을 담아두었던 커다란 플라스틱 수납용기에 뜨거운 물을 받아 씻겨주었다(우리집엔 화장실엔 욕조가 없다).
그땐 단순히 아이가 샤워기를 처음 봐서 무서워하는 줄 알았는데 다음날 그 비명의 이유를 더 잘 이해하게 됐다.
공원에서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근처 놀이터에서 놀던 동네 아이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며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O는 또 소리를 질렀다. 순간적인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공포에 질린 그런 비명.
갑작스러운 큰 소리는 아이에게 트라우마였던거다. 폭력 가정에서 자란 역사가 엿보이는 그런 순간들이었다.
하루는 친구가 우리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친구가 올 거라고 얘기해 주었고 O도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친구가 오기로 한 당일이 되자 아인 겁이 났는지 친구 못 오게 하면 안 되냐고 하루종일 칭얼거렸다.
아이에겐 ‘성인 남자’란 존재는 폭력을 행하는 존재로 각인되어 있는 듯했다.
친구가 도착할 시간엔 아이는 잘 준비를 다 마친 채 침대에 누워있었는데, 친구가 인사한다며 방문을 열었을 때 아이는 이불을 코 끝까지 덮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터질 것을 기다리는 듯 걱정 가득한 그런 눈빛을 하고선. 친구가 '안녕'하고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자 아인 언제 그랬냐는 듯 'Hello!'라며 귀엽게 웃으며 친구와 인사했다.
밝고 명쾌한 푸른 하늘에 띄엄띄엄 떠있는 잿빛 흑구름이 해 앞을 스쳐 지나가듯, O의 장난기 가득한 명랑한 일상에도 지난날의 그림자는 예고 없이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이 글은 5살짜리 영국 소녀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연재글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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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O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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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5. 애 키우는 건 처음이라
#5살 #위탁가정 #트라우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