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위탁아동 'O' 이야기 - 7편
아이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로 여유롭던 싱글 커리어 여성의 삶은 송두리째 엎어져 버렸다. 출퇴근 시간을 조금 조정하고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면 5살짜리 아이 육아와 회삿일을 소화해 낼 수 있을 줄 알았던 내 생각은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다.
O가 우리 집에 와있는 동안 내 마음속엔 온갖 감정이 왔다 갔다 했다. 처음 돌보는 위탁 아동이라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조마조마했고, 이렇게 어린 나이에 못 볼 걸 봐버린 아이가 너무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틈나면 엄마를 찾는 아이 달래느라 몸과 마음도 너무 지쳐있을 때, 장 보러 슈퍼마켓에 갔다가 넋 놓고 오열하는 일이 터져버렸다.
O와 함께 생활한 지 3-4일째 되는 날이었다. 퇴근 후 대형 슈퍼마켓에 데리고 가니 아이는 신이 나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원하는 물건을 골라대기 시작했다. 형형색색의 초콜릿과 과자등은 물론이고 파스타 소스가 든 유리병을 들고 와 사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이미 하루종일 정신이 나가 있었던 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아이를 옆에 잡아 둘 기력도 없었고,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금방 나를 잘 찾아오길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난 내가 필요한 장을 보았다.
그렇게 10분 정도가 흘렀고, 돌아오지 않는 아이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름을 부르면서 아이가 있을만한 과자 코너, 장난감 코너에 들렀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난 슈퍼마켓의 20개가 넘는 통로를 하나하나 지나다니며 점점 빠른 걸음으로 아이를 찾아 나섰다. 세제 진열 통로에서 아이가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발견했을 땐 거의 패닉상태에 빠졌다. 혹시 납치된 건 아닌가 -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다행히 아이를 잃어버린 지 30분 정도 지나자 슈퍼 내 방송이 울렸다. O의 보호자는 고객데스크로 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고 허겁지겁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일은 그때부터 터졌다. 한 흑인 아줌마가 길 잃어버린 O를 발견하고 보호자가 찾아올 때까지 아이 옆을 지켜주었는데 내 모습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언성을 높여 내게 뭐라고 하기 시작했다. 너 같은 쓰레기 같은 베이비시터는 신고해야 한다고. 아이를 어떻게 30분이나 내버려 둘 수 있냐고. 딱 봐도 젊은 동양인이 백인 아이를 데리러 오니 더 뭐라고 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던 거다. 더 어이가 없었던 건 10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아줌마의 두 아이들도 자기 엄마를 따라 내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쓰. 레. 기. 같. 은. 베. 이. 비. 시. 터.
아이를 잃어버린 데서 온 두려움과 죄책감, 아이의 안전에 대한 걱정 외에 이미 며칠간 쌓여온 아이의 상황에 대한 슬픔, 잘 돌보아야 한다는 불안함 등 이 모든 게 순간 산사태처럼 무너져 내렸다.
특히 '베이비시터'란 말을 듣는 건 너무 상처가 됐다. 난 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 나의 많은 것을 내려놓고 정말 많은 사랑으로 돌보고 있는데 이 아줌마만 날 고작 일 제대로 못하는 베이비시터로 보고 있는 게 그렇게 억울하고 속상했다. 눈물이 주체 없이 쏟아졌고 난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계속 소리 지르는 아줌마와 두 아이들을 경비원이 와서 제제하고 밖으로 내보내야 했고 난 그렇게 엉엉 울면서 남은 장을 보았다.
*이 글은 5살짜리 영국 소녀와 함께한 시간을 기록한 연재글 중 일부입니다.
O와 함께한 이전 이야기도 읽어보세요.
1. 프롤로그
2. O와의 첫 만남
3. O와의 첫 만남 (2)
4. 엄마가 아니라서 미안해
6. 애 키우는 건 처음이라
7. 너의 어둠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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