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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폴 포 댄스 축제와 일본 디자이너 초대

by 김지수

10월 3일 목요일


종일 하늘은 흐리고 가을비 추적추적 내렸다. 겨울처럼 추워 지하철에서 두툼한 겨울 외투를 입은 승객들도 보았다. 시월인데 어제 32도까지 올라가더니 하루 사이 20도 정도 기온이 뚝 떨어져 얼마나 추운지. 오전 글쓰기를 하고 늦은 오후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에 가는 중 여행서를 읽는 커다란 트렁크 든 승객을 보았다. 바야흐로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 찾아왔다.


플러싱 메인스트리트 지하철 역에서 목발 짚은 승객도 보면서 하늘나라로 떠나신 친정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해 급히 연락이 와서 얼마나 놀랐던지.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달리던 차가 전봇대에 부딪혔는데 모두 병원으로 급히 실려갔고 내게도 연락이 와서 갈치조림 먹으며 식사를 하다 놀라 달려갔다. 당뇨병이 있어서 수술을 했지만 회복은 빠르지 않아서 병원에 오래 머물렀다. 매일 아버지가 좋아하던 음식을 들고 병문안했다.


목발 짚고 다닌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건강처럼 소중한 게 어디 있겠어.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뉴욕에 와서 살다 보니 아주 작은 것에도 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예를 들어 지하철 운행이 연착되지 않는 것도 감사, 시내버스가 제시간에 오는 것도 감사, 무사히 세탁을 하는 것도 감사.


맨해튼 미드타운에 도착했는데 지하철역에서 교통 카드가 없는 사람이 그어 달라고 부탁을 해서 천사 역할도 했다. 렌트비와 교통비 비싼 맨해튼 지하철역에서 자주 교통 카드 그어달라고 부탁한 사람을 본다. 그만큼 어렵게 사는 사람이 많다. 낯선 흑인에게 교통 카드 그어주고 지하철역 밖으로 나왔다. 가을비 내려 우산을 펴고 걷다 미끄러질 뻔했는데 겨우 멈췄다. 지나가는 사람이 날 보고 웃으며 "잘했어요."라고 말했다. 하마터면 맨해튼에서 엉덩방아 찍을 뻔했다.


목요일 저녁 8시 아들과 함께 뉴욕 시티 센터(New York City Center)에서 특별 댄스 공연을 볼 예정이었다. 아들은 집에서 지내다 늦게 맨해튼에 오고 난 먼저 맨해튼에 도착했다. 공연이 열리기 15분 전 뉴욕 시티 센터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다. 매년 가을에 열리는 댄스 축제는 인기가 많아서 일찍 매진된다. 2019년 폴 포 댄스 페스티벌(Fall for Dance Festival)이 10월 1일부터 13일까지 열린다.


명성 높은 댄스 공연도 늦게 알았다. 뉴욕에 20대 유학 온 것도 아닌 내가 맨해튼에서 열린 모든 정보를 아는 것도 아니다. 매일 새로운 문화 행사를 찾아다녀도 하루아침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 않는다. 수년 전 늦게 댄스 축제를 알게 되었고 공연 티켓을 사러 갔는데 매진이라고 하니 구입을 하지 못한 적도 있고 유대인 휴일에는 공연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들었고 그러다 작년에 처음으로 공연 티켓을 구입해 아들과 함께 갔다. 평소 댄스 공연에 관심이 없는 아들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정도로 좋았다는 평에 올해도 아들을 데리고 갔다.


올해도 박스 오피스에 도착해 오래 기다려 티켓을 구입했으니 댄스 공연 보는 것도 열정 없이 불가능하다. 미리 티켓을 구입하면 깜박 잊기 쉬운데 잊지 않고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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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폴 포 댄스 페스티벌 10월 3일 저녁 8시 공연 환상적이었어.


뉴욕 시티 센터 앞에서 아들을 기다리는데 댄스 공연을 보려 찾아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놀라고 말았다. 특별 댄스 축제라 그런지 노년층도 많고 젊은 층도 많았다. 북적북적하는 곳에서 아들 만나기도 어려워 통화를 하고 어디에 있는지 확인을 했다. 아들을 만나 홀 안으로 들어가 오케스트라 좌석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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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티 센터 공연 홀 / 폴 포 댄스 축제 관람하러 온 사람들이 아주 많아 복잡했다.



특별 댄스 축제가 인기 많은 이유는 가격(1인 15불+ 수수료)이 저렴하고 세계적인 댄스 컴퍼니 공연을 볼 수 있다는 점. 댄스 공연이 대개 비싸다. 목요일 저녁도 4개의 댄스 컴퍼니 댄스 공연을 보았다. 우리 곁에서 음악가들이 연주를 하니 더 좋았지만 무대 시야가 약간 가려진 곳이었다. 공연 티켓 살 때 이미 좋은 좌석은 매진이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아서 공연이 시작하길 기다리는데 내 눈이 호수처럼 커다랗게 변했다. 세상에 일본 모자 디자이너를 만나다니 얼마나 놀라운지. 그녀는 우리 바로 앞 줄에 앉으려는데 좌석표를 확인하니 그녀 좌석이 아니라서 좌석이 어디야 하면서 찾는데 놀랍게 바로 내 옆좌석이었다. 우린 특별한 인연이 있나. 놀라운 우연이었다. 그 많고 많은 좌석 가운데 하필 바로 내 옆자리!


오래전 카네기 홀에서 아들도 그녀를 만났다. 서로 인사를 하고 어떻게 지냈냐고 말했다. 지난여름 거버너스 아일랜드 재즈 축제에 함께 가자고 하다 그녀가 롱아일랜드에 있다고 하면서 축제를 볼 수 없다고 갑자기 연락이 왔고 그 후 소식이 끊어졌다. 오랜만에 만나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지난여름 무얼 하며 지냈냐고 하니 매주 주말 롱아일랜드 North Fork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고. North Fork은 오래전 내가 롱아일랜드에 살 때 운전을 하고 찾아간 적이 있다. 무슨 축제를 찾으려다 우연히 포도밭을 지나쳤다. 그녀에게 오래전 방문한 곳이라 하니 웃었다. 올해도 차가 있다면 포도밭에 가고 싶다고 몇 차례 아들에게 말하곤 했다. 그랬더니 아들이 포도밭 사진을 보여줬다. 며칠 전 브런치에 올려진 프랑스 알자스 지역 포도밭 사진도 보았다.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 <마지막 수업> 배경이란 곳이라고. 알자스 하면 카뮈의 아버지가 살았던 곳이고 내가 존경하는 슈바이처 박사가 탄생한 곳이다. 대학 입학 때 설문 조사 시 존경하는 분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슈바이처 박사라고 했지.


8월 말 일본으로 떠날 예정이고 일본에서 모자와 그림 전시회를 갖는다고. 또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오스트리아에 가서 요트 클럽 이벤트에 참석한 사진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했다. 세계적인 요트 클럽 회원들이 참가하는 특별 이벤트라고.


그녀의 아버지 연세는 90세인데도 젊게 보이셨다. 요트들은 195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유지비가 아주 비싸서 모두 부자들이라고 해. 그 특별한 이벤트가 열린 곳은 오스트리아 Attersee라고. 구스타프 말러와 구스타프 클림트가 머물던 곳이란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요트 사진은 영화처럼 아름다워 얼마나 행복했을까 상상도 했다.


8시 공연이 시작하자 우리 대화는 중단되고 함께 댄스 공연을 관람했다. 미리 프로그램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관람했다. 4개의 댄스 컴퍼니가 참가했는데 모던한 컨템퍼러리 댄스 공연과 마지막 댄스 공연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댄스 공연은 록 공연과 서커스 분위기도 물씬했다. 관람객들이 얼마나 행복하던지. 댄스 공연은 밤 10시 반에 막을 내렸고 관람객들은 기립 박수를 치면서 최고로 멋진 밤이다고 표현을 했다. 일본 디자이어는 지난 10년 동안 댄스 축제를 감상했다고.


20대 후반인가 뉴욕에 와서 공부를 한 그녀와 나랑은 뉴욕에 온 시기는 다른데 서로 취향이 비슷해 놀란다. 그녀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그녀의 삶이 드러나고 나랑 비슷한 면이 참 많다. 물론 그녀는 일찍 뉴욕에 와서 공부를 하고 결혼을 했지만 커리어를 위해 자녀를 출산하지 않았으니 나랑 삶의 무게가 다르다. 나도 여유가 있다면 그림도 그리고 싶고 자주 여행도 가고 싶다. 그녀는 피아노도 배우고 테니스도 치고 서예, 꽃꽂이, 그림 등 잡기에 능하다. 아들도 엄마랑 너무 비슷하니 웃는다. 서로 취향이 비슷하면 쉽게 가까워진다. 사실 뉴요커들이 모두에게 친절하지도 않고 사적인 이야기를 나눈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음악과 여행을 좋아하면 금세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녀가 뉴욕 패션 스쿨 FIT에서 공부한 이야기도 놀랍고 재밌다. 우연히 그 학교 근처를 지나다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 물었다고. 패션 공부하는 학교라 하니 그녀가 관심이 많다고 하니 스케치북 주면서 당시 미국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이 쓸 모자를 스케치하라고 말했다고. 그녀의 스케치 솜씨를 보고 깜짝 놀라서 학교에서 그날부터 수업을 받게 되었다고. 세상에 학비도 내지 않고 어드미션 과정도 없이 그냥 수업부터 받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특별한 경우인가. 그녀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버린 학교 측. 결국 그녀는 세계적인 모자 디자이어가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릴 적 환경이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그녀의 아버지가 90세이니 어머니 연세는 묻지 않았지만 대강 어느 시기인지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녀가 어릴 무렵 서구 옷이 일반화되지 않아서 그녀 엄마가 그녀를 위해 드레스를 만들었다고. 그녀 외할머니도 역시 예쁜 기모노를 만들어 줬다고. 어릴 적부터 눈으로 보고 배우며 익힌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성공한 사람들 보며 경험이 정말 중요함을 느낀다.


댄스 공연 보러 가서 친구 만나서 즐거웠는데 아들과 나를 한 밤중 그녀가 만든 모자와 그림을 보여 주고 싶다고 그녀 아파트에 우릴 초대를 했다. 아들은 첫 방문이고 난 그녀의 아파트에 초대를 받아 식사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밤은 깊어만 가고 결국 새벽에 집에 돌아왔다. 아들과 함께 특별한 밤을 보냈다.


IMG_0845.jpg?type=w966 2019년 가을 카네기 홀 갈라 특별 공연


3일 목요일 밤 카네기 홀 갈라 행사도 열렸다. 갈라 티켓이 저렴했더라면 구입했을 텐데 포기하고 대신 댄스 공연을 감상하고 우연히 모자 디자이너랑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Anne-Sophie Mutter)와 첼리스트 Lynn Harrell 연주는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두 음악가 CD를 구입해 들었는데 뉴욕에 오니 만날 수도 있고 그런 면에서 뉴욕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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