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용한 하루를 보냈어

by 김지수


10월 2일 수요일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최고 기온이 32도까지 올라가니 종일 선풍기를 켜다 결국 창가에 설치된 작은 에어컨도 켤 수밖에 없었다. 수박과 팥빙수가 그리웠지만 얼음물을 마시며 위로를 했지.


팥빙수는 나와 인연이 없나. 지난여름 유에스 오픈 팬 위크 시 테니스 예선전 보러 갔는데 너무 더워 죽는 줄 알았다. 오죽하면 공 줍는 아이들이 테니스장을 떠나 세계적인 선수들이 웃으며 바라보았을까. 활활 타오르는 태양 아래 테니스 경기를 하는 것도 어렵게 보인다. 옆에서 가만히 앉아서 보는데 온몸에 땀이 줄줄 흘렀다. 선수들 몸은 말할 것도 없이 땀으로 뒤범벅하면서 경기를 했다. 팥빙수가 비싸서 자주 먹지 않는데 그날은 꼭 팥빙수를 먹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 경기를 보고 플러싱으로 돌아와 시내버스 기다리는 동안 뚜레쥬르에 팥빙수를 사러 갔는데 손님이 많아서 오래 기다렸다. 내 차례가 왔을 때 "팥빙수 주세요."라고 하니 "기계가 고장이 났어요."라는 직원의 말. 미리 알았다면 기다리지도 않았을 텐데 더위 먹은 날 실망도 컸지. 결국 올해도 팥빙수를 먹지 못했다.


아름다운 시월이라 아들과 함께 오랜만에 황금 연못에 산책이나 다녀오려고 했지만 폭발하는 태양의 열기와 싸울 투지가 부족해 포기하고 말았다. 가을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도 보면서 고추잠자리와 나비도 보면서 달려가 사랑하는 바다와 연못을 보면 기분도 좋을 텐데. 하얀 백조 가족은 아직도 황금 연못에서 살까. 백조가 잠든 모습도 보니 동화책 같아서 좋았지. 노랗게 물들어가는 숲도 환상적이지. 돌계단 옆 노란 숲이 너무 멋진 곳. 연못 옆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동네 주민들도 있고 연못 바로 옆 고속도로를 건너면 사랑하는 바다를 볼 수 있다. 가까이 요트 정박장도 있고 달려가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며 아름다운 석양을 봐도 좋을 텐데 뭐가 그리 바빴지. 10월 말이면 요트 정박장도 문을 닫을 텐데.


며칠 운동도 못하고 지내니 에너지가 사라졌을까. 맨해튼에 외출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르다 텅텅 비어간 냉장고가 생각나 장을 보러 갔다. 하늘에서 금방 비가 쏟아질 듯 먹구름 가득하니 아들 데리고 걸어서 장을 보러 갔다. 꼭 필요한 식품을 사려는데 영수증 보니 어마어마한 돈을 지출했네. 맛있는 고구마와 사과와 식품을 구입했는데 난 돈을 막 뿌리고 사는 걸까. 손질된 고등어 한 마리가 파운드당 약 3불, 손질 안 해준 고등어는 파운드당 약 2불. 소금 간 된 고등어 한 마리는 약 5불. 뉴욕은 모든 서비스가 돈이라는 것을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느낀다.


2주일에 5만 원 식품비(1인)로 썼다는 재즈 음악가 레벨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겠어. 나도 항상 절약하고 낭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아직도 많이 부족하나. 빨간 사과도 구입하고 행복했어. 사과하면 세잔이 생각나는데 맛도 좋고 계절 식품이라 1년 중 가장 저렴한 시기. 물론 사과 가격도 천차만별이고 비싼 사과는 눈으로 먹지. 환절기라 잊지 않고 노란 유자차 2병도 구입했다. 지금이야 마트에 가면 유자차를 살 수 있는데 오래전 유자도 귀했지. 박스에 담긴 유자를 선물 받아 유자차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했는데 얼마나 힘들던지 잊히지 않는다. 혼자서 여러 사람 먹을 것을 만든 일은 쉬운 일은 아니야. 지금은 마트에서 구입하는 세상이니 참 편리하다. 도마에 유자를 잘게 썰어 설탕에 재우고 빈 유리병에 담는 단순 노동도 피곤했어. 유자 분량이 너무 많아서 혼자서 다 하려니 손목도 아프고 쉬운 일이 아님을 처음으로 느꼈다. 내가 하지 않았으면 결코 몰랐을 것을.


가을이라 그런지 잔디도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거리에 낙엽 뒹구니 가슴이 시리는 계절. 곧 한 해도 막이 내리겠구나. 타임 스퀘어 새해 이브 축제 보려고 이미 호텔 예약 한 사람도 많겠지. 2년 전인가 새해 이브 축제 보려고 타임 스퀘어 가려다 맨해튼에 갔는데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아서 포기했다. 일반인들은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한 채 자정까지 기다린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호텔과 레스토랑 예약한 사람은 사정이 다르겠지. 그날 아들이 감기에 걸려 몇 주 동안 죽을 고생을 했다.


IMG_0809.jpg?type=w966
IMG_0841.jpg?type=w966
플러싱 거리를 걷다가


시월이 찾아오니 예쁜 배롱나무 꽃은 말없이 안녕하고 내년에 보자고 멀리 떠나버렸다. 시월인데 아직 장미꽃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장미에게 말을 걸며 아들과 함께 터벅터벅 걸어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왔다. 새들은 뭐가 좋은지 종일 얼마나 소란스럽던지. 파티를 했을까. 맨해튼 음대에서도 마스터 클래스도 열렸는데 집에서 지내니 머나먼 님이었어.


뉴욕 The New School은 창립 100주년을 맞아 축제를 열고 있는데 다양한 행사도 많을 텐데 곧 막이 내릴 텐데 볼 수 있으려나. 매일매일 뉴욕은 신세계. 아무리 신세계라 하더라도 내가 열지 않으면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지. 한국에서 지낼 때 드보르작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뉴욕에 와서 살게 되니 고등학교 시절 음악 시간에 배운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이 새롭게 다가온다.



목요일은 종일 비가 온다고 하고. 왜 기온 변화가 심한지 몰라. 환절기 감기 조심해야겠어. 모처럼 황금 연못에 가려다 포기했는데 언제 가나. 날마다 세월은 흐르고 어느새 10월이 다가왔어. 더 열심히 살자. 즐겁게 행복하게 살자.














keyword
이전 01화선물 <언어의 온도>, 줄리아드 학교_뉴 뮤직 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