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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며

살면서 문득 드는 소소한 생각의 기록들

by 윈디박

2025년 6월 4일.

지난 6개월이 한여름 밤의 꿈만 같다. 우린 웃고 울고 분노하고 소리 질렀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푸르렀다. 거짓말처럼. 햇살은 눈부셨고 바람은 시원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나 보다. 매일 보는 풍경이 달라 보인다. 작지만 소중한 일상이 다시 시작된다.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다는 '사람'을 보면 참 신기하다. 난 사람을 많이 만나면 만날수록 에너지를 잃는 듯하다. 그 오랜 세월 사회생활 어찌했는지 모르겠다.. 하긴 젊을 때는 잘 인지를 못했었을 수도 있었겠다. 나란 인간이 어떤 유형인지, 이제 아주 정확하게 나 자신을 알겠다. 아내와 아들과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는 나 혼자만의 시간을 사랑하고 그 시간을 통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래도 나는 감수성과 공감능력이 지나친 듯. 가끔 삶이 무척 피로하다.

남이 대수롭지 않게 지나칠 수 있는 사안이 나에겐 간혹 버겁게 다가올 때가 있다.


사람을 만나 부대끼며 생업을 영위하고 있으나 그래서 홀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책을 읽는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난해한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매혹되고, 김동률의 감성 어린 노래를 청승맞게 부르고, 보후밀 흐라발의 위트 넘치는 문학세계에 빠져드는 일이야말로 걍팍하고 예민한 장년 남성의 삶을 지탱하는 것들이다.

아마 10년이 지나면 이 시기가 또 절절히 그리워지겠지. 인생은 그런 것이다.


7,80년대 팝 음악을 한 소절 듣고 맞히는 퀴즈 유튜브 동영상을 시청했다. 80프로 이상 맞추는 날 보고 아들이 한마디 한다. "중2병이 얼마나 세게 왔길래 이걸 거의 다 맞춰?" 그래도 이런 동영상을 아들이랑 볼 수 있는 난 성공한 인생이다.

심지어 이번 주말에는 아들과 단둘이 노래방도 다녀왔다.

아들은 켄드릭 라마의 'Humble'을, 나는 김동률의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불렀다. 절묘한 세대의 조합이다. 서로 정말 잘한다라고 칭찬했다. 행복한 주말이다.


"마음이란 그런 거야. 결코 균등한 게 아니지. 강물의 흐름과도 같아. 그 지형에 따라 흐름의 모양이 바뀌는 거거든."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중에서 -


정말 그러하다. 부모이든 자식이든 '마음의 감정'이 균등할 수 없다. 어떠한 마음은 나 자신마저 태워버릴 듯 뜨거운 불꽃이고, 또 다른 마음은 손 대면 에일 듯 차갑기 그지없다. 같은 이치로 타인의 마음도 그러하지 않겠나. 이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일견 너무 당연한 원리이다. 마음이 통했다는 것만도 기적적인 확률의 일일 것이다. 교제를 시작하거나 짝이 되었다 하더라도 마음의 질량이 동일하겠는가. 머리로는 이렇게 간단한 논리를 우리는 대부분 '체득'하지 못한다. 혹여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속박하거나 그의 감정을 강요하지 말자. 불완전한 인간이 어디 쉽겠나 만 마음의 지옥에 빠진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없으니 하는 이야기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기다리는 모습을 좋아한다. 홀로 책을 보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잠시 후 나를 보며 미소를 지을 그 얼굴을 눈에 담는 걸 애정한다.


우리의 이 모든 소소하고 행복한 일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살아만 가는 것이 아닌, 살아 있는 동안 항상 '깨어'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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