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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그냥 Jun 29. 2020

1년 반만의 진짜 휴가에서 실패를 잊다.

내일이 두려운건 당연한 거겠지.


나는 말이 없다. 몇 시간째 쥐죽은 듯 조용한 거실에서 멍하니 소파에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오늘은 정확히 휴가를 시작한지 5일 째 밤이다.


지난 2년반 은 지독한 시간이었다. 지독하게 쓸모있고 지독하게 알찼으며 지독하게 훌륭했다. 사회에 나와서 일을 시작한 후 지난 10년의 시간중 가장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던 시간이었다.


시작은 2017년 말이었다. 2016년 소박하게 시작한 브런치의 글은 나에게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아직 읽어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내 꿈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내 꿈은 언제나 '전문가'가 되는 것이었다.

 대학생때부터 8년간 휴학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위해 경험을 공유하고 상담소를 운영하며 천여명의 후배들의 시시콜콜한 휴학 사유를 듣고 대답하면서 인생은 참으로 정답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생각을 다르게 해보는 것만으로 동일한 현실은 언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기에 책과 정보가 넘치고 찾아보면 무료로 도움을 받을 곳이 많은 너무 최적의 시대에 태어난 나였다.

 휴학멘토 역할을 하면서 한 쪽으로 내꿈인 '전문가'에 다가서기 위해 회사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배우고 깨지고 회사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율배반적이게도 당시 휴학상담에서 가장 많이 한 멘트는 이거였다.

 "입사가 인생의 끝이 아니에요. 지금 저도 회사 다니지만 학생분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있잖아요"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몸소 깨닫고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면서 내 인생도 내 직무에서 쌓은 것을 정리해나가는 다음 스텝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이미 대학생활에서 너무 멀어져버린 휴학 상담을 조용히 멈추게 되었다. 대신 난 '위클리 브런치'연재를 신청했다.


 그게 나의 진짜 다음 스텝의  시작이었다. 위클리 브런치는 강의가 되었고 더 좋은 글이 나올 구실이 되었다. 마침 팀이 바뀌어 시간에 쫓기지 않고 책도 엄청나게 읽을 수 있었고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으며 외부 좋은 강의도 많이 보러 다닐 수 있었다. 신입 때 이후 2번째의 인풋의 시간이었다. (업을 정리한다는 것은 아웃풋처럼 보이지만 굉장한 인풋이다.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던 자신의 지식을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정리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인풋이다.)


 아웃풋의 시간은 2019년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마치 공부한 것들을 모두 토해놓듯 거대한 프로젝트  속에서 단기간에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고민하기 위해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1년 반을 버텨냈다. 그리고 같은 기간동안 나는 책을 만들고 다양한 강의를 이어나가며 나를 빚어왔다.

 그렇게 사회생활의 2번째 스텝을 겪은 지금의 나는 초년생때의 나와 완전히 다르다. 속근육이 생기듯 단단해지고 예민한만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처음 사회생활후 6년이 '주어진 상황에서의 생각의 유연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었다면 그 뒤에 2년반의 시간은 '인풋과 아웃풋을 반복하는 것이 사람의 인사이트를 얼마나 성장시킬 수 있는가'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지난주는 그 긴 두번째 스텝을 마무리하는 첫 휴가였다. 프로젝트가 오픈 된 뒤의 전전긍긍함과 책이 나온 뒤의 분주함이 지나가고 처음으로 조용히 보낸 휴가의 5일.


 내 글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역시 생각하기에 달려있다.

 지난 10년의 시간동안 난 휴학멘토로서 역할과 상담소 운영을 조직화하기에 실패했고, 수많은 강의가 항상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었고, 협의하다가 없어진 강의도 무수히 많으며, 미처 펼쳐보지도 못한 기획안들은 그대로 버려졌고, 책도 베스트셀러는 아니고, 1년반동안 매달린 서비스에는 안팎으로 불만과 챌린지가 닥쳐오고 있다. 그렇게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인 일들이 항상 기대만큼 되진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온 모든 것이 실패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아니었다. 실패의 기준은 오로지 스스로가 실패라고 할 때뿐이니까.

 오늘 하루는 초록풀이 우거진 집앞 개천과 저 멀리 산등성이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잘하고 있나 그리고 잘 나아가고 있나를 잠시 잊었다.

 그리고 새벽이 왔다. 휴일은 끝나가고 있는 지금, 텅 비었던 머리속을 비집고 한가지 고민이 떠오른다.


내일은 또 어떻게 살아나가야하나?


 나는 사실 다음에 올 스텝이 조금 두렵다. 나의 다음 스텝은 어떻게 만들어야할까? 그때도 지금처럼 실패를 실패라 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에 자신을 가질 수 있을까?


 오늘 어쩌다 배우 문숙님의 인터뷰를 봤다.  '나는 모른다'가 만트라라고 한다. 만트라는 중얼중얼 되뇌이며 영혼에 영향을 주는 진언이다.

배우 문숙님의 인터뷰


 너무 잘하려하지 않고, 지금까지보다 더 힘들까봐 겁내지도 말고 내가 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것에 두려워하지도 말고.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배우고,  욕심은 욕심대로 인정하되 안될 수 있다는 것 되뇌여야지.

 그저 숱한 오늘들이 쌓여서 지금이 되었을 뿐인데, 내일이 두렵다는 건 욕심이 많아졌다는 것은 아닐까.


 이러는 사이에 달도 조용히 산등성이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의  다음 스텝도 이제 시작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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