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뼈.
내 몸의 구석구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지만, 유독 꼬리뼈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딱히 기능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으니 존재감이 희박한 부위다. 어릴 적, 사람에게 꼬리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더듬어 봤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겨울, 어느 송년 모임에서 2차로 이동하던 중에 눈이 녹아 있던 계단에서 발을 헛디뎠다. 두 발이 아래로 몇 단을 미끄러져 내려간 후 엉덩이로 주저앉아버렸다.
부끄러움.
넘어진 사람에게 제일 먼저 찾아오는 것은 고통보다는 쪽팔림*이다. 툴툴 털며 일어섰다.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면서, 부축하며 걱정하는 분들을 안심시키려 전혀라는 말도 곁들였다. 전과 혀 사이에 1, 2초 정도의 장음을 더하면서. 술기운이 있었지만 엉덩이는 상당히 얼얼했다. 어른이 되고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아픔이었다.
*쪽팔리다 :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표준국어대사전)
다음날 아침, 침대에서 눈을 떴는데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목부터 다리까지 몸의 뒷부분 어디도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일어서려면 온 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 같고, 똑바로 누워 있는 것이 불편하지만 옆으로 돌아 눕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두 다리로 서기, 허리 숙이기, 앉기, 상반신 돌리기...... 무엇 하나 편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엉거주춤 주변에 있는 것들을 두 손으로 붙잡으며 움직여야 했다. 특히나 재채기를 한 번 하면 아픈 꼬리뼈를 방망이로 때리는 느낌이 든다는 것을 알고는 코가 간지러울 때마다 공포감에 떨어야 했다. 그리고, 다음날은 일본으로 가족 여행을 떠나는 날이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몸이 불편해서 가장의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한 것은 물론, 여행 후에도 한 달 이상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했으니 나와 가족이 한 번 본 적도, 인식한 적도 없던 내 꼬리뼈 부상으로 인한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왜 몰랐을까? 그저 쓸모가 없어져서 이름만 남아 있는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지만, 이상이 생기니 그 별것 아닌 것에서 시작되어 온몸과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했다. 몸이 크게 움직이거나 중요한 동작을 할 때마다 이름뿐인 이 부분에는 힘이 모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중심이 제 구실을 못하니 제대로 된 다른 부분의 어느 하나 소용이 없었다. 움직임이 둔해진 나의 시간은 남들보다 다섯 배는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고,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그날 계단에서 부주의했던 자신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공기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소중함을 떠올릴 때 우리는 이런 일어나기도 힘든 상황을 가정해 본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더라. 소홀히 했던 내 몸의 일부만 평소와 달라봐도 그 소중함은 알게 된다.
실제로 꼬리뼈는 기능이 완전히 사라진 퇴화 기관이 아니라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