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로 향하는 길을 즐기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나는 여행을 할 때 종이책과 블루투스 키보드를 꼭 챙겨 다닌다. 특히나 기차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는 동안, 그 시기에 제일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좋은 생각이 떠오르면 스마트폰을 세워 놓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늘과 들판이 그림 같던 어느 날 기차에서 창밖으로 눈길을 주다가 문득 이 습관이 어딘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비행기는 어느 정도 고도에 오르고 나면 하늘과 구름만 눈에 들어오고 그 풍경이 워낙 넓게, 오래 펼쳐져서 첫인상이 주는 감동은 크지만 이내 질릴 수 있다. 게다가 밤하늘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결국 비행기에서는 창밖을 자주 보게 되지는 않는다. 이착륙할 때 미니어처 같은 도시의 모습을 보는 재미에 지상의 온갖 도형들이 점처럼 보일 때까지 내려다보는 정도랄까. 그래. 나에게 비행기는 책을 읽고 글을 쓸만한 곳이다.
기차의 창밖 풍경은 계속 바뀐다. 터널을 지날 때나, 밤이라 하더라도 불빛이 없는 마을을 지날 때가 아니라면 무엇이든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창틀 안에 담기는 장면은 매 순간 똑같은 것이 없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 장면이 스쳐가는 시간 동안 나는 오로지 글자만 쳐다보고 있었다는 것을. 심지어 책을 읽다가 눈이 피로하거나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눈을 감고 잠시 잠을 청했다. 창밖을 본 시간이라고 해봐야 몇 번 되지도 않는 잠시 정도였을까? 철마다 변하고 한 번의 여정 안에서도 끝없이 바뀌는 풍경을 다 놓치고 있었다니.
여행하는 이의 마음은 목적지에 닿았을 때보다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서 더 설렌다고들 하던데,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글자 놀이에 몰입하느라 그 감정을 챙기지 못했다. 인공적인 재미에 두는 마음의 반만이라도 그때 그냥 창밖에 있는 것들에게 나누었더라면, 훨씬 더 많은 감상이 남았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후에는 열차 안에서 욕심 냈던 것보다 더 많은 글자가 남았을지도.
지하철로, 버스로, 매일 우리는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 있다. 혹시나, 지금 일상을 여행하는 우리의 눈이, 그 순간 우리 주변을 스쳐가는 그림을 시야 밖에서 무심코 흘려보내며 손에 쥔 작은 창에만 몰두하고 있는 건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