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모마을 보호수/ <팜프라>의 '코부기'견학하는 날
지난번 용문사 다녀오는 길, 남면 곳곳에서 본 미스터리 한 공중도로(?)의 정체가 풀렸다. 자동차 도로라고 하기엔 폭이 너무 좁고, 짓다 중단된 놀이공원 시설이라고 하기엔 위치가 너무 생뚱맞던, 호구산 중턱에 마치 손오공 머리띠처럼 둘러진 그것은 바로 농업용 수로였다. 가뭄이 들면 금산 보리암 밑의 복곡저수지로부터 물을 담아 남해 곳곳에 실어 나르기 위한 용도란다. 2주 넘게 해답을 찾지 못했던 궁금증이 해박한 택시기사님 덕분에 드디어 풀렸다.
오늘은 지난번 네트워크 파티 때 다짐했던 <팜프라> 견학 가는 날이다. 팜프라가 진행하는 이동식 목조주택 짓기 프로젝트 '코부기'를 직접 둘러보고 '언젠가 귀촌시'의 주거 대안을 생각해 보고 싶었다. '코부기'는 팜프라가 개발한 농촌형 소규모 대안주택으로서 6평 이하의 DIY 건축물이다. 워크숍에 참여하면 기초, 구조, 인테리어까지 건축 전 과정을 실습할 수 있단다. 매 기수별 워크숍마다 버전이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고 있는데, 생각보다 내부가 아늑하고 단열기능이 좋았다. 창을 열면 언제나 산뜻한 들과 깨끗한 하늘이 보이는 작고 귀여운 집. 도시에서 못 이룬 내 집 마련의 꿈을 코부기로 실현해볼까나. 낭만의 얼굴을 한 욕망이 또다시 김칫국을 들이켠다.
* 혹시 팜프라에서 진행하는 코부기 워크숍이 궁금하다면 : 코부기워크숍 (farmfra.com)
남해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당산나무가 꽤 많다. 오래된 마을 입구에는 으레 200년 정도는 거뜬히 넘은 아름드리 당산나무가 수호신처럼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리고 그 곁에는 대게 평상이나 정자가 놓여있어 주민과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 두모마을엔 놀랍게도 보호수가 다섯 그루나 남아 있었다. 수백 년간 개울가에 나란히 서서 마을의 흥망성쇠를 지켜봐 온 나무들. 그중 제일 큰 왕어른 나무에는 금줄이 쳐져 있고, 옆에는 큰 돌덩이에 금줄을 두른 ‘밥무덤’도 함께 있었다. 제법 널찍하고 반듯한 대리석 제단까지 갖춰진 것을 보니, 아직도 마을 사람들이 매년 제를 챙기며 공경하고 있나 보다.
신이 되어버린 나무, 보호수. 주민 그 누구보다도 마을에 오래 머물러 온 존재, 소멸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보며 덤덤히 시간을 버텨온 존재, 새로 태어난 것들에게 과거의 무게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존재. 그에게 인간이 외경심을 품는 것은 어쩜 당연한지도 모른다. 도보여행 중 우연히 지나는 어느 당산나무 밑에서 제물로 올려진 막걸리 한 병을 봤을 때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렇듯 유효한 오랜 믿음과 누군가에게 기대고픈 간절한 마음이 남긴 애틋함 때문이었나 보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꽃내 마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여기가 너무 예뻐 감동이었는데... 정갈한 설촌면에 가보니 거기가 더 좋고, 아기자기한 양화금 마을에 가보니 거기가 더 좋고, 풍요로운 물건마을에 가보니 거기가 더 좋고, 바다와 산을 모두 가진 두모마을에 와보니 또 여기가 더 좋아 보인다. 남해에는 고운 마을이 너무 많아서, 머무는 날들을 더해갈수록 '혹시 귀촌하게 되면 어느 마을을 골라야 하나' 고민이 점점 깊어진다. 이건 마치 로또도 사지 않은 채 1등 당첨금으로 무얼 할까 진지하게 고심하는 꼴이다. 오늘의 두 번째 김칫국, 벌컥벌컥 으아 배 불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