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32살 어른이 받은 선물
참 이상하지. 너에겐 분유 냄새가 나.
아기 배냇머리에 코를 박고 숨을 훅 들이켰을 때 나는 그런 냄새 말이야.
그게 너무 좋아서 나는 너를 두 팔로 끌어안고 또 끌어안지.
1923년 5월 5일.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어린이들이 올바르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고, 어린이에 대한 애호사상을 앙양하기 위하여' 어린이날로 지정했다. 기억이 살아 있는 유치원생 때부터, 그리고 성인이 된 지금까지 어린이날은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좋아하는 공휴일이다. 집안 경제 사정이 결코 넉넉친 않았지만, 성실한 대한민국의 부모였던 엄마 아빠는 어린이날엔 촌스러운 꽃무늬의 포장지로 쌓인 선물을 잊지 않고 건네주셨다. 그 선물이 무엇일지 너무나 궁금해서 어린이날 하루 전에는 잠을 설칠 지경이었다. 부모님은 어린이날엔 내 두 손을 양 쪽에서 잡고 유원지나, 집 앞 공원이나, 동물원 같은 곳으로 데려가 주시곤 했다. 정말로 퍽이나 고마운 것이, 어린이날만큼 그런 장소들이 차 밀리고 복잡하고 정신없기란 힘듬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엔 더 이상 어린이날 선물도, 유원지로 가족 소풍을 가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니라고..) 어쨌든 누구나 빨간 날은 모두 좋아하지 않는가.
방정환 선생님이 처음 어린이 날을 지정하고 98년 후, 때는 바야흐로 2021년 5월 5일. 나는 그 애를 처음 만났다. 그는 형제 중에서도 가장 유별나고 장난기가 많아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아무도 밟지 않는 첫눈처럼 말갛고 하얀 털 위에 아주 희미하게 시나몬 가루가 흩뿌려져 있는 듯했다. 그 이는 쏜살같이 소파 아래로 들어갔다가 펜스를 뛰어넘다가 책 위로 뛰어 올라갔다. 내 눈은 바쁘게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 애는 공장에서 태어났다. 다행히 추운 겨울은 지났지만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3월 초순이었을 것이다. 어미가 그이와 그이의 형제를 어떻게 출산하고, 양수로 젖은 털을 핥아 주고, 모유를 먹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자동차 공장의 엔진시험실 안에 어미가 새끼를 품어 기르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따뜻해서... 그저 온기를 빌기 위해 어미는 본능적으로 무거운 몸을 끌고 그곳으로 향했을 테다.
매우 감사하게도 따뜻한 가슴을 가진 공장의 직원이 어미와 새끼들을 발견했고, 이내 그들은 평안을 찾게 되었다. 깨끗한 물과 먹이를 주고, 접종을 맞추고, 어미는 중성화 수술을 시켰다. 어미의 색은 검고 갈색이자 하얀색으로 도화지에 온갖 물감을 어지러이 짜둔 듯했다.
함께 있던 네 마리의 새끼 중 세 마리는 눈처럼 하얳고, 한 마리는 콜비잭 치즈 같았다. 그들은 행복했다. 더 이상 어미가 새끼들을 두고 먹이를 찾으러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언제나 맑은 물을 마실 수 있었고, 공장 직원들은 어미와 새끼를 사랑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함께 살 수는 없었다. 한 평생 그들을 가족으로 함께 지켜줄 사람 곁으로 가야 했다. 모두 함께 같은 집으로 가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5월 4일, 어린이날 하루 전날. 같이 모임을 하는 선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혹시 고양이 입양할 생각이 없냐고. 그리고 몇 장의 사진을 받았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바로 다음 날, 그이를 데려갈 약속을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 이후 처음으로, 어린이날 하루 전에 밤잠을 설쳤다. 얼마나 눈부신 선물일까. 어미와 네 마리의 새끼는 신도림에 살고 있는 직원의 집에 잠시 거처를 두고 있었다. 커다란 고양이 캐리어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두근두근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녀석과 처음 마주한다. 작고 꼬물거리는,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내 앞에 있었다. 콜비잭 치즈 같은 녀석은 이미 다른 가족에게 입양되어 떠나버렸고, 새하얀 새끼 세 마리가 남아 있었다. 보호자는 구별을 위해 다른 색의 목걸이를 걸어 두었다. 세 마리 새끼의 이름은 γ 감마, θ 세타, ν 뉴 였다. 역시 공대생이 지은 이름인가 하고 피식 웃음이 났다. 보호자는 세 마리의 성격과 특성을 매우 자세하게 설명하고, 지금 우리 집에 있는 고양이와 관계가 어떨지를 함께 고민해준 후 '뉴'를 데려가는 걸 제안했다.
'뉴'는 형제 중에서도 가장 먼저 펜스를 뛰어넘은 용감한 고양이라고 했다. 사교성도 좋고 낯가림이 적은 편이라 집에 있는 고양이랑도 잘 어울릴 듯하다고... 나의 이름과 비슷한 그이가 나도 퍽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두 팔로 그 작은 몸을 감싸 안았다. 그 이에게 분유 냄새가 났다. 아기 배냇머리에 코를 박고 숨을 훅 들이켰을 때 나는 그런 냄새. 너무 작고 가벼워서 그 소중한 것이 혹여나 다칠까 조심하면서도 그 냄새가 좋아서 그이를 영원히 안고 있고 싶었다.
이제 나랑 우리 집에 가자.
본능적으로 떠남을 알았을까. 그이는 제 어미에게로 달려가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고 또 빨았다. 눈물이 핑 돈다. 어미는 제 배로 나은 새끼를 몇 번이나 다른 가족에게 보내야 했다. 얄궂은 운명이다. 미안해. 우선 택시를 부르고 '뉴'를 캐리어에 실었다. 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나랑 같이 인생의 다른 막을 시작해보자. 나랑 함께 살자. 로찌야.
와디즈 경영추진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