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교환학생으로 잠시 머물렀어요. 리옹이라는 도시에서 론 강을 매일 바라보며 지냈고, 마트에서 가장 싼 와인을 매일같이 집어 들었던 가난한 학생이었죠. 일주일에 한 번은 와인 한 병씩 손에 들고 누군가의 집에 모여 파티를 열고, 한 달에 한 번은 가장 싼 비행기표나 기차표를 구해 여행을 다니던 시절이었어요.
매일같이 와인 사왔던 마트 영수증들과 매달 여행을 떠났던 시절에 쌓여가던 각종 기차표들
그때 마셨던 와인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와인바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었네요.
이렇게 작고 작은 경험들이 쌓여서 새로운 경로를 만들어가는, 그런 삶의 순간들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기록 덕후라고 본인을 소개해주셨는데 조금 더 부연해주실 수 있나요?
소중한 "순간"을 기록해두는 것이 습관이자 취미예요.
고등학교 때 친구에게 생일선물로 일기장으로 쓸 수밖에 없는 작은 노트를 받은 이후로 계속해서 삶의 순간들을 기록해오고 있어요. 기록한다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과 연결 짓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에게 기록하는 것은 생각한다에 가까워요. 글로 적어 놓을 때도 있지만, 그림이나 사진으로도 그 순간의 기록들을 남기려고 노력해요.
(3GS시절부터 사용하던 아이폰에는 이제 800개가 넘는 기록이 쌓여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문장이 있으면 그림으로 기록하고요)
와인바 언저리에서 뭔가 끄적거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저일 수도 있겠네요 :)
와인바를 하면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맨 처음 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어느 책에서 봤던 건축물 안에 직접 서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아주 많은 고생 끝에 다다른 그곳에서, 이 건축물이 왜 “성당”인지 알 수 있었어요. 사실 밖에서 봤을 때는 전혀 성당 같이 생기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안에 들어갔을 때, 서로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수많은 창에서 쏟아지는 빛들과 작은 책상 위에 놓인 촛불 하나에서도, 성스러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신과 만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공간의 느낌’이 좋았어요.
전혀 성당처럼 생기지 않은 외관의 롱샹성당, 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더없이 성당스러운 곳
그래서 맨 처음 와인바,라고 했을 때 와인도 좋지만 어떤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것에도 매력을 느꼈죠. 좋은 공간의 느낌을 만들어가고 싶어요. 문을 열고 공간에 들어섰을 때, 자리에 앉아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나눌 때, 그 모든 느낌과 기억이 잘 담길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와인바를 기획/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다들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와인바 준비할 시간을 내기 어려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와인바를 만들어나가려면 수많은 의사결정이 필요하니까 어떻게든 모여서 의견을 나누려고 하죠. 바로 얼마 전에도 밤늦게 논의할 사항이 생겼어요. 지금 한창 와인바 인테리어 중인데, 작업 기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주말이 되기 전에 세부 사항을 정해서 공사에 착수해야 했거든요. 그래서 밤늦게라도 와인바 공사장에 모여서 작업할 사항을 정해야 했죠. 밤 12시에 모여서 새벽 2시가 넘도록 공사 중인 와인바에 서서 논의를 이어갔어요. 끝나고 나니까 다리가 아파오더라고요.
인생 와인이 있다면?
한 병의 와인을 꼽기는 어렵지만, 아무래도 매일 같이 프랑스의 론 강을 바라보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리운 마음이 드는 론 지역의 와인을 좋아해요. 그때는 정말 가난한 교환학생 신분이어서, 비싼 와인을 마시기는 어렵고 마트에서 싼 와인 중에서 그나마 어떤 것이 더 맛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했었거든요. 아무래도 가까운 지역의 와인이라 종류가 많기도 했겠지만, 저렴한 가격 대비 마셨을 때 심심하지 않은 어떤 감칠맛이 있다고 느껴져서, 매번 론 지역의 와인들을 골랐던 기억이 있어요.
매일매일 바라보던 론 강의 낮과 밤
이제는 그래도 그때 그 시절보다는 비싼 와인들을 한두병 골라 마실 수 있지만, 여전히 어딘가 톡 하고 마음을 건드리는 허브나 후추 향내가 스치는 론 와인을 종종 집어 들어요. 이제 저희는 와인바에 둘 와인 리스트를 고민하는 중인데, 론 와인도 한 병 들여놓을 수 있으려나요...
와인바에서 해보고 싶은 이벤트가 있나요?
론 와인을 리스트에 상비해 둘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이벤트로라도 론 와인을 함께 마셔보면 좋을 것 같아요. 보르도나 부르고뉴만큼 유명하지 않아서 모르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하지만 론 와인은 확실한 향의 특징이 있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마셔도 이건 론 같다, 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예쁘게 기록할 수 있는 그림과 함께 향과 맛의 느낌을 가져가시면 좋겠네요!
와인바가 어떻게 기억되었으면 하나요?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거리에 마켓이 많이 열려요. 크리스마스 마켓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뜨끈하게 끓여내는 뜨거운 와인, 뱅쇼예요. 매일 마실 수는 없지만 찬 바람이 불 때면 왠지 모르게 생각나죠.
저희의 와인바는 다양한 사장님들이 있어요. 왠지 모르게 한 번씩 생각날 만큼 재미난 사람들이에요.
어떤 날이 있을 거예요. 와인을 마시고 싶은 날,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날, 어쩌면 다들 특이하고 재미나다는 7명의 사장님 중 누군가를 만나고 싶을지도 몰라요. 그런 어떤 날에 생각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요. 그 공간에서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어가셨으면 하고요.
운전도 못 하는 바보가 퇴직금을 밑천 삼아 떠난 ‘뚜벅뚜벅 와인 여행’. 60일간 10개국에서 마신 211종의 와인 여행 이야기. 포도밭에서 해본 인생 최초이자 최고의 도둑질과 독일 와인 포차, 이탈리아 광장에서의 노상 음주, 그리고 프랑스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받은 프로포즈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수많은 에피소드는 여기서▼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2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