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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07. 2020

와인을 오크통에 보관하는 치명적 이유?

오크통의 모든 것. A to Z

와이너리에 쌓여있는 오크통

와인 하면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바로 커다란 오크통이죠. 와인 양조장을 방문하면 엄청나게 쌓여 있는 오크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혹은 와인 샵이나 마트에 가면 빈 오크통을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하죠. 여기서 궁금한 점들이 떠오릅니다. 왜 번거롭게 와인을 오크통에 담았다가 와인병으로 옮길까요? 모든 와인은 오크통에 보관될까요? 왜 소나무나 은행나무가 아닌 ‘오크나무(참나무)’로 통을 만들까요? 이번 글에서 궁금증들을 뽀개 봅시다.




어떻게 처음 오크통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암포라’라고 하는 항아리에 와인을 보관했습니다. 잘 깨지고 와인이 쉽게 쏟아져서 적절한 보관 방법은 아니었어요. 그러다 고안된 것이 바로 오크통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암포라 항아리 (출처 : 위키피디아)

쉽게 부패되는 목재 특성 때문에 오크통의 기원을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헤로도토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야자나무통으로 와인을 보관했다고 해요. 하지만 뻣뻣한 야자나무는 구부리기 힘들어서 통을 만들기 힘들었고, 대체재를 찾다가 발견한 것이 오크나무입니다. 적어도 2천 년 전 로마제국 시기부터 오크나무가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와인 양조자들은 오크통이 보관 편의성뿐 아니라 와인을 맛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발견하죠.



그럼 와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오크나무에는 미세한 구멍들이 있습니다.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출입하면서 와인이 산화되고 증발하죠. 가장 보편적인 사이즈의 오크통은 225리터인데, 1년간 약 20리터가량의 와인이 증발합니다. (이를 천사의 몫이라 하여 ‘Angel’s share’라고 부릅니다) 물과 알코올이 증발됨에 따라 와인 자체의 향과 맛의 밀도가 높아지고, 오크통으로 들어오는 미세한 산소는 와인의 타닌을 부드럽게 산화시킵니다.

스페인 왕실의 인증을 받은 Freixenet 와이너리

뿐만 아니라 오크 나무 자체에 포함된 화학물질도 와인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목재에는 ‘페놀’ 성분이 있는데, 이는 와인에 ‘바닐라’ 같은 향과 맛을 내게 합니다. 목재에도 타닌 성분이 있는데 이는 와인이 지나치게 산화되는 것을 방지합니다. 오크통을 만들 때 나무가 쉽게 구부러지도록 살짝 굽는데요, 어느 정도 구워졌는지(토스팅이라고 합니다)에 따라서도 와인에 다른 풍미를 줍니다. 커피콩을 얼마나 로스팅했는지에 따라서 커피 향이 달라지는 것과 유사한 원리입니다. 오크 때문에 와인의 향은 ‘캐러멜, 크림, 스파이시, 시나몬, 모카, 토피’ 등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토스팅(가열) 정도에 따른 오크 색 변화

와인 양조자, 포도 품종에 따라서 오크통에 와인을 보관하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와인에 오크 향이 적절히 베개 하는 것을 ‘오크 터치’라고 하는데요, 오크통에 오래 보관할수록 ‘오크 터치’가 강하게 되었다고 표현합니다. 제작한 지 얼마 안 된 새 오크통은 와인에 오크 향이 강하게 베개 하고, 이 과정에서 와인 침전물이 서서히 오크의 미세한 구멍을 막습니다. 따라서 여러 번 사용한 헌(?) 오크통은 향도 약하고 산소 투과력이 약해짐에 따라 숙성 속도도 느려집니다. 일반적으로 피노누아처럼 야리야리한 품종은 짧은 기간, 타닌 함량이 높은 네비올로 같은 품종은 장기로 오크통에 보관됩니다. 일부 스페인의 리오하 와인은 오크통에서 10년 가까이 보관되기도 한다고 해요.



오크통에 대해 더 알아볼까요?

앞서 일반적인 오크통은 225리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지만 일부 신대륙(미국, 뉴질랜드 등 유럽 지역이 아닌 곳) 와인 메이커는 300리터 정도로 훨씬 더 큰 오크통을 쓰기도 합니다. 오크통의 크기는 왜 중요할까요? (중학교 과학 시간을 회상하며…) 오크통의 크기가 작을수록 부피 당 공기에 노출되는 표면적 비율이 커집니다. 즉 작은 오크통일수록 와인 양 대비 오크통과 접촉하는 면적도 커지고 산소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오크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죠.

이렇게 거대한 오크통도 있습니다



오크통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나무 수확

오크나무는 절단되기 전까지 무려 80-120년간 자라야 합니다. 추운 지역의 빽빽한 숲에서 자랄수록 품질이 좋은데요, 이는 나무가 천천히 성장할수록 목질이 단단하고 조밀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확시기는 대체로 겨울인데 이는 겨울철에 나무 수액 양이 적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나중에 수액을 빼려고 건조시켜야 하거든요. 나무 한 그루를 자르면 225리터 사이즈의 오크통을 만들기에 충분한 목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목재 건조

목재를 손으로 분리한 후 실외에서 오랜 시간 자연 건조하는데, 목재에 따라 다르지만 약 10-36개월까지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때 필요 이상으로 강한 타닌이 제거되기 때문에, 오랜 시간 목재를 건조할수록 부드러운 오크터치를 주는 오크통으로 거듭납니다. (대신 제작 단가가 높아지지요) 최근에는 기계를 이용해서 인위적으로 짧은 시간 건조하기도 합니다.

오크통의 세부 구성

조립

목재판을 불에 살짝 가열하면 말랑말랑해지면서 변형이 가능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증기로 가열하기도 합니다) 오크통 형태로 판들을 배열하고 쇠고리로 고정하면 우리가 흔히 아는 오크통 형태가 됩니다. 목재를 얼마나 오래 가열하는지에 따라 ‘토스티(toasty)’ 함에 차이가 나는데요, 적게 가열할수록 나무 특유의 오크향과 타닌이 그대로 보존됩니다. 즉 적게 가열할수록 오크가 강하게 발현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리여리한 부르고뉴 피노누아를 양조할 때는 강하게 가열된 오크통을 사용하여(오크 자체의 향과 타닌이 적어진 상태) 와인 자체의 풍미를 보존합니다.

전통적인 수제 방식으로는 오크통 제작자 한 명이 많아야 하루에 하나의 오크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야매로 오크향을 내는 법?

앞서 언급했듯 오크통을 만드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매우 단가가 높은 작업이기 때문에 일부 양조자들은 ‘오크칩’이라는 제품을 사용합니다. 오크 나무 조각 같은 것을 와인에 넣어서 발효하면 오크 특유의 향이 와인에 베개 됩니다. 일반적인 오크통을 사용하면 향이 우러나오기 까지 1년 가까이 걸리는 반면, 오크칩을 쓰면 몇 주 내로 향이 발현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와인 양조자들은 대놓고 오크칩을 까는데요…?

오크칩

오크통은 미세한 구멍으로 와인을 산화시킬 수 있지만 오크칩을 넣으면 이 과정이 불가하고, 또한 오크 향 자체도 일차원적이라는 비판입니다. (그래도 저렴하다면 뭐…) 스테인리스 통에 오크칩을 넣어 와인을 숙성하는 기술이 여러모로 개발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2006년까지도 유럽 연합은 오크칩 사용을 법으로 금지했는데요, 실제로 1999년 보르도 법원은 오크칩을 사용한 4개의 양조장에 13,000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바가 있습니다.



더 알고 싶다면? 국가 별 오크통  


미국산 오크

Quercus alba

미국산 오크통을 만들 때는 주로 마릴란디카참나무(Quercus alba) 사용되는데, 이 나무는 상대적으로 빨리 자라고 크며 탄닌 함량이 적은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주리, 미네소타, 위스콘신과 같은 미국 동부에서 주로 자라며 이 지역에서 주로 오크통이 생산되는데, 오레곤에서는 다른 종류의 참나무인 Quercus garryana가 자랍니다.
미국의 오크통 제조자들은 보통 나무 건조 시 ‘Kiln-dry’ 방식을 사용하는데, 대기 중에서 건조를 시킬 경우 불필요한 화학물질들과 쓴 타닌이 침출되는 장점이 있지만 ‘Kiln-dry’ 방식은 이런 장점은 없습니다. 미국 오크통은 적절한 양의 타닌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 채워진 와인에 과일향과 조화로운 타닌을 공급하여 조화롭고 부드러운 맛이 납니다.
미국 오크는 프랑스 오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바닐라와 달콤한 향이 더 강한데, 이는 미국 오크가 보통 2~4배 더 많은 락톤류(lactones, 에스테르)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탄닌 성분이 강한 레드와인이나, 더운 지역에서 자란 샤르도네이를 숙성시킬 때 미국 오크가 사용됩니다. 미국과 프랑스 오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목질인데, 프랑스 오크가 상대적으로 더 단단하며 수분 함량이 적습니다.


프랑스

Quercus petraea

프랑스에서는 로부르참나무(Quercus robur)와 페트라참나무(Quercus petraea) 둘 다 오크통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하지만 페트라 참나무가 상대적으로 더 목질이 촘촘하고 바닐린 향과 탄닌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더 우수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프랑스 오크통은 주로 알리에, 리무쟁! 네베르, 트롱세, 보주와 같은 일차림(Primary forest, 자연림, 인간간섭이나 자연재해에 의한 교란이 없는 숲)에서 주로 생산되며 각 숲의 나무마다 약간씩 다른 특성을 가집니다. 많은 양조자들은 여러 종류의 목재, 지역, 그리고 토스팅 정도에 따른 오크통으로 블렌딩을 하는데, 이로 인해 와인의 다양한 풍미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오크는 나무의 약 20~25%만 오크통 제작에 활용 가능하기 때문에 미국 오크에 비해 훨씬 비쌉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더 잘 산화되고 아로마를 빨리 배출하기 때문에 약 6~10개월 정도로 미국 오크에 비해서 더 짧은 시간 건조됩니다. 프랑스 오크는 미국 오크와 달리 더 부드럽고 적은 함량의 타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Quercus robur


이탈리아 양조자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로부르 참나무(Quercus robur)로 만들어진 슬로베니아 오크를 사용했는데, 이는 목질이 매우 단단하며 향이 적고 중간 정도의 탄닌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슬로베니아 오크통은 보통의 오크통보다 커서 부피 당 와인이 공기에 노출되는 표면적이 최소화되어 더 오랜 기간 동안 사용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전에는 발트/유럽 국가들에서 자란 페트라 참나무(Quercus petraea)가 프랑스 양조자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헝가리의 Zemplén산에서 자라는 나무는 화산토에서 매우 천천히 자라며 아주 미세하고 단단한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고품질의 오크통을 만드는데 적합합니다.


헝가리

헝가리 오크의 셀룰로오스는 쉽게 쪼개지고, 선택적으로 매우 독특한 토스트, 바닐라, 설탕, 스파이시, 캐러멜 같은 향을 전달하여 프랑스나 미국 오크에 비해 향이 강하지는 않습니다. 많은 양조자들은 이처럼 부드럽고 크리미한 형태의 헝가리 오크를 선호하였지만, 20세기 초반 세계대전이 발발함에 따라 나무들이 잘려나감에 따라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철의 장막이 드리워짐에 따라 프랑스는 다시 Zemplén 산에서 자란 참나무로 만들어진 헝가리 오크를 수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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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D. Sogg "White Wines, New Barrels: The taste of new oak gains favor worldwide" Wine Spectator July 31, 2001
T. Stevenson "The Sotheby's Wine Encyclopedia" pg 33-34 Dorling Kindersley 2005 ISBN 0-7566-1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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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2019년 한 해동안 1,200개 가 넘는 커뮤니티 이벤트를 개최했다. (자칭 이벤트 전문가)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전) 독일 UNCCD(유엔사막화 방지기구) FCMI 팀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

서울대학교 아시아 연구소 1기 인턴 팀장

서울대학교 국제 협력본부 학생대사 이벤트 팀장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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