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을 위한 레스토랑, 준비했어.

고양이 두 마리 기르는 집사 필독

by 누리

평생 너만 올 수 있는 레스토랑이야. 내 여자가 되어 줄래? 평생 밥은 내가 책임질게.


먹보 고양이 집사 3년차, 일생일대 최대 난관에 봉착하는데? 둘째 고양이가 생겼어... 근데 밥은 어떻게 주지? 첫 째가 다 먹어치울 것 같은데? (아마도) 세계 최초 특허 급 아이디어로 고양이 배식에 성공한 썰 풉니다.



야! 거기 닭가슴살 내려놔!

닭가슴살 도둑은 바로 우리 집 첫째 고양이, 로나다. 잠시 식히려고 그릇에 옮겨둔 닭가슴살 한 덩이를 물고 줄행랑을 친다. 아직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뜨겁지도 않나? 냅다 쫓아가서 닭가슴살을 뺏는다. (뜨겁잖아...) 부리나케 주방을 대충 정리하고 닭가슴살을 잘게 잘게 찢어 호호 불어 식힌다. 먹기 좋은 크기의 먹음직한 닭가슴살이다. 로나야 맛있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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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만큼 쪼그마할때부터 식탐이 엄청났던 로나



우리 집 첫째 로나는 애기 때부터 식탐이 어마어마했다. 사료를 밥그릇에 가득 쌓아둬도 금방 먹어치우기 일쑤. 그러다 몸무게가 8.3kg까지 나가는 돼지 냥이 되었다. 비만 때문은 아니었지만, 방광염을 크게 앓아 병원 신세를 지고 난 이후 의사 선생님은 로나에게 다이어트 소견을 주셨고 로나는 식이조절을 하게 된다.

KakaoTalk_20210725_181114828.jpg 2020년 1월 1일, 방광염으로 입원해 있는 로나.


다이어트, 방법은 간단하다. 자율배식이 아니라 양을 정확히 지정해서 시간대 별로 주는 것. 내가 집에 붙어 있으면 매시간 룸서비스처럼 고양이님께 진지를 하사하면 되겠으나, 고양이님을 모실 월급을 벌어야 하는 직장인이었기에 이는 불가하다. 그래서 구매했다, 자동 급식기! 사료가 나오는 시간과 급여량을 세팅해두면 그때그때 자동으로 밥이 나오는 최첨단 아이템이다.


19108443375.20190507155950.jpg?type=f640 최첨단 자동 급식기



심지어 목소리 녹음도 할 수 있어서 '로나야, 밥 먹자. 로나 밥 ♬'을 외치는 내 목소리가 고양이 밥때마다 울려 퍼졌다. (나중에는 노이로제가 걸렸다... 내 목소리 듣기 싫어) 하루 네 번, 아침 7시, 오후 12시, 5시, 9시. 로나는 매번 규칙적으로 10~20g의 사료를 먹게 되었다. '로나야 밥 먹자' 알림이 울려 퍼지면 로나는 갖고 놀던 장난감을 던져 버리고 급식기 앞으로 집합해 허겁지겁 사료를 먹었다. 사료가 사라지는 시간, 30초 컷. 순식간에 사료를 비운 로나는 혀로 입 옆의 털을 핥으면서 쩝쩝 내심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다른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고양이가 워낙 예민한 편이다 보니 급식기를 싫어해서 먹기를 거부하는 애기들도 있다고 한다. (로나야, 고마워)



그리고 최근, 어마어마한 난제가 생겼는데...! 둘째 고양이 로찌를 데려온 것이다. 데려올 당시 로찌는 태어난 지 2-3개월 밖에 되지 않은 어린 고양이였다. '애기 밥을 어떻게 주지...?' 로찌 전용 밥그릇에 사료를 주면 로찌가 입을 대기도 전에 로나가 30초 컷으로 로찌 밥을 다 먹어치울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로나는 방광염 재발 방지용으로 처방식 사료를 먹고 있었고, 로찌는 새끼 고양이용 사료를 먹어야 했다. 매 시간 붙어서 로나를 못 오게 막고 밥을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지... 단골 동물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KakaoTalk_20210711_171134795_06.jpg 오빠에게 한 주먹 거리도 되지 않는 막내 로찌.


나 : 상황이 요래 저래 한데, 이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죠?

병원 : 보호자님, 그럴 때는 어쩔 수 없어요. 고양이 두 마리를 분리해서 급여해주셔야 합니다. 다른 방에서 사료를 주세요.


나 : 죄송한데... 제가 원룸이라... (돈 없는 자취생은 서럽다)

병원 : 아.... (^^;;) 그럼 어쩔 수 없겠네요. 애기 고양이도 너무 배고프면 필사적으로 같이 밥을 먹으려고 할 거예요. (화이팅!) 뚝뚝뚝뚝.... 공허한 전화벨 소리만..



이 사태라면 로찌는 정말 굶어 줄을 수도 있다. 게다가 로찌 녀석은 식탐이 많지도 않다. 집단 지성의 힘을 빌리고자 네이버에 검색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이 심정을 달리 토로할 길이 없어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나 : 엄마, 나 최근에 둘째 고양이 데리고 왔잖아? 근데 첫째가 얘 밥 다 뺏어 먹는다. 어떻게 하지...?

엄마 : 어이고 그거 큰일이네. 매번 밥을 따로 줄 수도 없고... 집에 따로 방도 없고...

나 : 그니까


엄마 : 그라면, 그 커다란 상자 하나 사가꼬 거기다가 로찌만 들어갈 수 있는 정도로 구멍 뚫버 가가지고, 그 안에다가 밥 넣어 놓으면 안되나?

(갑자기 아빠 등장) 그래, 그 니네 집에 못이랑 뺀찌 있제? 그거 못 불에 달가가지고 그걸로 플라스틱 통 녹카봐라. ......

나 : 엄마, 엄마 천재야? 이런거 동물 병원에서도 모르던데?

엄마 : 야, 엄마가 누꼬. 딸 서울대 보낸 엄마 아이가?



그 길로 다이소에 가서 9L짜리 김치통을 샀다. 의기양양해서 가족 단톡방에 사진을 보냈는데 반응은 냉랭. '너무 작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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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었다. 로찌를 김치통에 넣어봤더니 로찌만으로 이미 꽉 차는 것이다. 영수증과 김치통을 꼭 쥐고 다이소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 (아마도) 완벽해 보이는 물건을 발견. 70cm*50cm 정도 되는 큰 플라스틱 박스다. 거기다 위에서 양문형으로 뚜껑이 열린다.

YES!

5천 원의 호사를 누리며 집에 도착. 그런데 구멍을 어떻게 뚫지? 대학 전공부터 직업까지 40년 찐 엔지니어인 아빠에겐 플라스틱에 구멍 뚫기란 누워서 떡 먹기였겠지만 나에겐 수능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해결책은. 식칼을 가스레인지에 충분히 데운 후 천천히 플라스틱 통을 겨누었다. 매끄럽진 않지만 어떻게든 울퉁불퉁하게 구멍을 뚫어 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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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고군분투해서 뚫은 구멍, 상자가 그을렸다.


그 안에 조그마한 밥그릇을 넣고 사료를 가득 부었다. 레스토랑 완성. 첫 (반갑지 않은) 손님은 첫째 로나다. 코를 바싹 들이대던 녀석은 본인이 어떤 노력을 해도 그 커다란 몸을 레스토랑 안으로 구겨 넣을 수 없음을 곧 깨닫고 쓸쓸히 퇴장한다. (입뺀) 그리고 다음 손님, 둘째 로찌. 호기심을 갖고 기웃기웃하더니 플라스틱 레스토랑으로 쏙 들어간다. '냠냠 쩝쩝'



이 플라스틱 레스토랑은 여전히 로찌 전용이다. 두 달 사이 둘째의 몸집이 꽤 커져서 최근에 구멍을 더 크게 뚫었다. 소식 쟁이 로찌는 한 번 사료를 잔뜩 쌓아두면 다 먹는데 까지 3일이 넘게 걸린다. 하지만 다행히 로찌가 밥 못 먹을 걱정은 없으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그리고 집사는 결국 투룸으로 이사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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뇸뇸뇸 냠냐미


덧, 이 고양이 식당 제품으로 양산해서 팔면 돈이 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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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누리

운동과 술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석유화학회사를 때려치우고 와인 공부하다 스타트업에 정착했다. 창의성과 영감이 샘솟는 삶을 위해, 인생을 변화시킨 사람과 문장들을 수집 중이다.


(현) '일곱잔' 와인바 사장 @신사

와디즈 경영추진팀


(전) 와인 21 객원 기자, 레뱅드매일, 파이니스트 와인 수입사 홍보 대사

패스트파이브 커뮤니티 크리에이터팀

독일 UN, FCMI팀

석유화학회사 환경안전경영팀

서울대학교 과학교육, 글로벌환경경영 전공

산림청 주관, 유네스코 - DMZ 지역 산림 생태 연구 인턴

한국장학재단 홍보 대사

4-H 동시통역사, 캐나다 파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