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닫힌 결말을 향해 나아가다.

by WineofMuse

초창기 메뉴의 콘셉트는 이랬다. 쌀국수와 볶음밥을 가족단위로 즐길 수 있는 메뉴들로 구성하리라.

아이들이 먹을만한 소고기 쌀국수는 향신료 향이 강하지 않았다. 연령대가 낮은 아이들도 안심하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소불고기 덮밥도 넣었다. 좁디좁은 홀 공간을 쪼개 접이식 유아의자도 2개 준비했다. 전체 테이블이 4개 정도 나왔고 꽉꽉 들어차면 14인 정도까지 입장이 가능했지만 상당히 불편하고 협소한 상황이었다.

이런 홀의 여건과 맞물려 메뉴 선정을 고려해야 했다.


쌀국수 메뉴는

- 소고기 쌀국수 (양지, 차돌, 우삼겹 선택 가능)

- 매운 해물 쌀국수

- 매운 소고기 쌀국수


볶음밥 메뉴는

- 하노이 볶음밥

- 새우볶음밥

- 파인애플 볶음밥

- 소불고기 볶음밥


튀김류는

- 야채 춘권

- 해물 짜조

- 새우튀김

- 치즈감자볼


대략 이 정도의 구성에 음료와 베트남 맥주 등이 음료로 자리를 잡았다. 상당히 알찬 구성이었다. 어지간한 국수류 전부와 할 수 있는 만큼의 볶음밥 가짓수 튀김과 음료까지.


주변 상권을 충실히 돌아보며 장점만을 쏙쏙 뽑아온 완전체 같은 형태의 메뉴를 잡았다. 레알 마드리드급 메뉴는 우리의 자신감을 충분히 투영했고 동네의 가족단위 내방객에게 최고의 음식을 판매하겠다는 다짐과 포부를 그대로 표현한 것이기도 했다.


한 달 전에 생긴 그 쌀 국숫집은 가격도 저렴하고 메뉴도 5가지가 넘지 않았다. 사이드도 부실했고 음료 외에 주류도 판매하지 않았다. 그 가게보다는 우리 가게가 누가 봐도 먹을 게 많고 예쁘고 메인 상권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메뉴 선정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승자의 위치에 자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각종 면과 고기류, 향신료 등이 업소용으로 집에 쌓이기 시작했다. 업장에서 쓸 용도이니 당연하게도 업소용 대용량을 구매했다. 테스트 용도 치고는 참 대책 없이 많이도 샀지만 언젠가는 다 쓰이겠지라는 안일한 생각도 있었다.


집에서 육수를 끓이고 주변 학부모들과 지인들에게 맛 평가를 부탁했다. 대부분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졌고 간혹 부정적인 평가 앞에는 '난 쌀국수가 잘 맞지 않아서...'라는 서두가 마음의 위안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말린다고 들을 것도 아니었다. 열린 마음과 열린 귀라고는 하지만 목적이라는 뚜렷한 편견에 갇혀있는 당사자들은 듣고 싶은 말만 취사선택하여 들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렇게 닫힌 결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내가 만든 쌀국수는 너무나 맛있었다. 큰 원육에 향신료 무, 대파 뿌리, 양파, 마늘, 약간의 생강등을 넣어 한국적인 맛도 가미했다. 불린 쌀국수 면을 브랜드별로 담아두고 육수를 붓고 얇게 썬 고기 고명을 얹었다. 레몬 양파 고수도 준비되었고 상큼한 양파절임도 하루 전에 담가두었다. 해선장과 스리라차 소스를 적정 비율로 섞어 양파절임에 찍어 먹었다. 고수가 푹 담긴 시원한 육수를 한모 금하면 천년의 숙취도 내려갈듯한 청량한 시원함이 몰려왔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정성 가득한 육수와 신선한 고기 풍부한 소고기 고명에 단가가 몇% 인지 생각지 않았다. 그리고 당시의 기분대로라면 이렇게 평생 육수를 내고 살다 죽어도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을 콩깍지가 씐 상태라고 표현한다.


'나는 뭔가에 단단히 씌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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