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정리
삐졌다.
인간들에게 대체적으로 삐졌다.
올해로 마흔셋이다.
친구들에게 야속했다.
매번 때 되면 돌려야 하는 안부인사는 항상 나의 몫이었다.
심드렁한 친구들의 목소리 한번 듣겠다고 굳이 전화를 걸곤 했다.
미주알고주알 털어내는 근황 토크도 이제는 좀 시들했다.
다들 애크는 이야기, 직장은 어떤지, 건강 등에 대해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면
더 이상 할 이야기가 없었다.
만나서 술 한잔 하자는 뻔한 이야기로 마무리 지었다.
사실 만나도 술 한잔 맘 편하게 할 여건도 마땅치 않았다.
다들 내일의 일이 있고 자식들 챙겨야 하니 총각 때처럼 부어라 마셔라
신나게 맘껏 즐기지도 못한다.
서운함이야 그렇다 치고 이것들은 어지간한 경조사가 아니고서는
그냥 전화를 하는 법이 없었다.
몇 안 되는 친구들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먼저 연락을 안 하기로 했다.
옛 직장과 오래된 인연들과의 안녕을 고했다.
그때는 그 사람들과 영원할 줄 알았다.
청춘을 함께한 사람들이었고 인생의 큰 굴곡을 함께 겪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미묘한 벽이 항상 존재해왔다.
서로가 진심을 다하지 못했다.
항상 어떤 불만과 염증을 가지고 살았다.
즐거이 만나 여행을 하고 오면 항상 불만이 남는 관계
상명하복이었을까.
상대가, 혹은 내가 소시오패스는 아닐까.
머릿속을 어지럽게 하는 그 혼란스러운 습관과 술버릇, 말버릇 그 모든 게 짜증스러웠다.
연락을 끊어내었다.
이제는 더이상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커리어의 대부분과 인간관계의 50% 이상이 날아갔지만 마음은 평안을 얻었다.
쓸데없는 관계의 정리
동문회니 뭐니 기타 소소한 단체들로의부터 모든 알람을 끊었다.
매년 열리는 동문회에서 주요한 자리를 맡아달라던가 자문을 해달라던가
후원을 해달라는 등의 연락이 많이 왔다.
후원단체에도 후원을 끊었다.
미안하게도 아프리카의 그 아이에게 내 돈이 얼마가 전달되는지를 알고 난 이후
후원에 대한 미련도 깔끔하게 접었다.
소방관을 위한 복지라던가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사회적 운동등에 한때나마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
이제와서 보니 모든것이 다 이권 사업의 영역이었고
그러한 캠페인은 일반인은 감히 손대지 말아야할 영역이기도 했다.
철저히 이해 당사자만 만질 수 있는 이슈였다.
가지치기를 했다.
가지치기를 당했다.
인간관계로 부터 자유를 얻었다.
정말 남을 사람만 남겨두었다는 표현이 딱 맞다.
내가 앞으로 평생 볼 사람이거나 멀어진다고 붙잡거나 불필요한 설명이 필요없는 사람들만 남았다.
더 이상 불필요한 부탁과 연락은 받지 않았고 요건이 명확한 일들만 연락이 왔다.
나도 더 이상 일부러 연락할 필요를 못 느꼈고 더 이상 사람과 연락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다.
외로울 것을 각오했다.
사실 외롭기도 하다.
하지만 복잡한 사람과의 사이에서 멀어짐으로 해서 오는 평안과 자유로움에 대한 보상이 더 크다.
오롯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고 에세이를 읽거나 드라마 대본에 관심이 있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고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며 지내고 있다.
슈퍼스타 K에 나갈거냐는 농담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20대에는 타이포그래픽과 그래픽 디자인, 건축디자인 공간, 배치, 배색 등에 빠져 살았는데
그 사이에 취향이 많이 바뀐듯하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요즘 인스타에 일본쪽 꽃꽃이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와인을 심도있게 공부했고 사람들에게 와인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작게나마 품었다.
진심을 다하지 않기로 했다.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게 거리를 두기로 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져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으로 지내기로 했다.
내 마음에 담긴 정의 크기는 그대로이고
누군가를 생각하고 마음 쓰는 농도는 같다.
다만 나의 태도에 변화를 주고 연락의 빈도와 질에 변화를 주기로 결심한것이다.
마흔셋 드디어 제대로 된
나를
그리고 너를
만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