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군은 피해도 팔자는 못 피한다.
주전자를 들고 동네 어딘가에서 막걸리를 받아오라는 심부름을 갔다.
다녀오는 길에 어디를 들르라 했는데 이발소였다.
아저씨는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이 놈 보게...
"제비추리에 쌍가마네"
스윽 스윽...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이발을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발사 아저씨는 미리 약조된 대로 머리카락을 시원하게 빡빡 밀어버렸다.
새파란 민머리가 되어 버린 나는 그렇게 주전자를 출렁거리며
동네가 떠나도록 울어재꼇다.
민머리가 이렇게 된 게 세상 수치스럽고 부끄러울 수 없었다.
허락도 없이 내 머리를 밀어버리라 이발사 아저씨와 몰래 거래를 한 아버지가 미웠다.
이후 이발소에서 바리깡소리가 들릴 때마다 지겹게 듣던 이야기다.
"제비추리에 쌍가마"
"장가 두 번가 겄네"
흥이다.
이렇게 생겨먹어서 어떻게 장가를 간다는 건가.
믿지 못할 이야기였다.
나도 집에 거울이란 물건이 있다.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나에게도 첫사랑이란 게 있었다.
긴 생머리의 그 누나는 나보다 3살 연상이었다.
하얀색 아반떼 수동을 모는 멋진 누나
뭐 결핍의 연장선상이랄까.
나는 연상의 여인이 좋다.
본가에 그래도 얼굴이라도 한번 보여드렸건만
어머니께선 무슨 조심성이 그리도 많으신지
앞길도 창창한데 조심하라고만 이야기했다.
대체 뭘 조심하라는 건가.
3살 연상이라는 나이가 못내 거슬렸을까.
그래, 그때는 그래 보였겠지.
지금 보면 우스운 나이지만 말이다.
22살 25살
정말 꽃다운 나이였구나 싶다.
대뜸 태어난 해와 일시를 알아오란다.
여동생의 아버지였다.
아마도 두 번째인가 세 번째 뵙는 분이었다.
어머니의 남자이면서 여동생의 아버지
당연히 나와는 피 한 방울 나누지 않은 어르신이다.
본인 이야기이지만 국내 최고의 요가 선구자시며
대구 경북지역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역술가셨다.
취미로 수석을 모으시고 수석 집을 하셨지만 벌이는 참 신통치 않으셨던 듯하다.
그 당시에도 박물관에 갈법한 고물 코란도를 끌고 다니셨다.
무려 2 도어 코란도였다.
매연이 실내로 들어와서 한겨울에도 창을 열고 다녀야 하는 코란도였다.
그 코란도를 타고 돌을 주우러 다녀온 적도 있었다.
그다지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 싶다.
돌을 왜 줍나.
돈도 안되는걸 그 추운 겨울에 손이 팅팅 붓도록 말이다.
코란도 엔진만큼이나 탈탈 거리는 고물 486 컴퓨터로 역술 프로그램을 돌리셨다.
한자가 가득한 프로그램에서 뭔가를 추려내시더니 돋보기를 꺼내
한 자 한 자 읊어주셨다.
누구는 둘이 많고 나무가 많아서 초년에 부모행이 없으며...
경찰이나 형사가 잘 어울리겠으나...
흐음...
지금 여자 친구와는 멀리하도록 하여라.
사주에 자식이 없다.
ㅇㅇ 이 너는 사주에 여자가 둘이다 평생을 그리 살 것인데
피할 수 없을 것이니 항상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살아라.
기가 찰 노릇이었다.
사주가 한 인간의 자식의 유무도 맞추며 우리의 운명도 점지하는구나 싶었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있는 성모 마리아 상과 십자가는 무어란 말인가.
어머니께서는 나를 찾기 위해서 절을 다니셨고
천주교 학교에서 나를 발견한 이후로는 천주교를 믿으셨다.
결혼할 때가 되어서는 향교에 드나드셨고 연례행사로 점을 보러 다니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일컬어 참 편리한 "착탈식 종교"라며 소심하게 비아냥 거려보기도 했지만
어디 어른들 하는 일에 쪼끄만 게 나서냐며 한껏 고양된 호통소릴 들어야 했다.
첫사랑과의 가슴 아픈 이별 이후
그녀의 소식은 간간이 들려왔다.
아들을 하나 얻었다 했다.
자식이 없기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 뭐 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행히 아기도 낳고 잘 사는구나.
모 증권회사에 보안팀장으로 승진하고 하는 걸 보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하고 좋으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자식이 없다는 소리는 좀 성격이 다른 이야기였다.
삶을 약간 기울여서 봐야 하는 문제였던가.
주중에는 어머니댁에 아들을 맡겨두고 주말에만 이틀 같이 지낸다고 했다.
애는 그럼 할머니가 키우고?
흠...
그려요.
그 이야기였구나.
싶었다.
그래서 삶에 자식이 없다는 소리였구나.
본인의 커리어와 공부, 사회적 성공이 자식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구나.
그래 그럴만하네.
나야 모르지 뭐.. 내 자식도 아니고.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탈탈 털어낸 첫사랑이었다.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300 번들 었고
난 딱 한번 말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일말의 후회도 없다.
단 하루도 널 용납할 수 없다는 말로 마음을 후벼 팠다.
사실을 이야기했다는 것에 가장 크게 울었던 그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다른 짝이 찾아왔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아홉수였다.
상견례까지 마치고 온 마당에 아홉수라 안된다고 장모님께서
선을 그었다.
어머니가 질세라 어디선가 점을 보고는 4년 후에 식을 올리라 했다.
지겹다. 지겨워.
대판 싸운 뒤 정말 4년 동안 얼굴을 보지 않았다.
4년의 시간이 지나 생일까지 지난 후 식을 올리자 하니 내년에 하란다.
대판 싸웠다.
다시는 안 보기로 했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아도 연락 한번 없다.
피장파장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다.
팔자에 대한 속담만 30개는 족히 될 것이다.
개팔자가 상팔자로 시작하는 팔자의 대부분은
대략 정해진 궤 대로 인생이 흘러간다 라는 이야기가 주요 골자이다.
현대 자동차에서 10조를 들이며 삼성동 부지를 구매할 때도
점쟁이한테 물어봤다 하지 않았는가.
안 하면 찜찜하고 하자니 비난받고
샤머니즘이란 게 그런 거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건지.
그래서?
내 팔자는 어디서 어떤 각도로 바라봐야 하는 건지?
제비추리에 쌍가마라...
이걸 좋다고 해야 하나.
미리 정해진 운명, 예정된 삶의 궤라고 해야 하나.
이성과 감성의 영역에서 한껏 날을 세워 첨예하게 바라보아도
도무지 알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정갈하게 살기로 했다.
내 사주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팔자대로 걸을지.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봐도 이렇다.
산군은 피해도 팔자는 못 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