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속삭임이 서울의 거리를 물들이기 시작했다. 단순히 산과 나무만이 아닌, 우리의 마음까지도 은은한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행복한경영대학 동우회 모임에서 필자는 한양 도시 해설해주시는 이상준 선생님과 함께 시간여행을 떠났다. 조선의 한양에서 현재의 서울로 이어지는 500년의 역사를 따라 걸으며, 도시의 켜켜이 쌓인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속삭였다.
도성의 심장부를 걷다
덕수궁, 경복궁, 광화문
서울 시청에서 출발해 덕수궁 동쪽 돌담길에서 경순왕후 릉에 대한 얘기와 태종때 왕자의 난 이후 경순왕후 릉을 이관하고 묘지석들을 청계천 보수공사에 사용하게 한 얘기, 성공회 서울교구 내 있는 옛 덕수궁 흔적과 6월 민주화 항쟁 시발점이 장소 등을 듣고 광화문으로 향하는 길에서 우리는 광화문 뒤로 북악산과 자연을 그대로 담은 경복궁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광화문 사거리 앞에 있는 이름모를 기념비가 영조 재위 40년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비석이고 대한민국 거리의 시작점이라는 숨은 이야기를 들었다.
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청계천의 역사
청계천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수 많은 외국인들이 청계천에서 발을 담그면서 즐기는 모습을 뒤로하고 해설하시는 선생님은 청계천 복원 때 정조 대왕의 "원행을묘정리의궤"에 대해 긴 시간동안 열의를 가지고 설명해주셨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참배와 수원 화성 성역 완공 축하를 위해 8일간 진행한 대규모 행차로 당시 한양의 번영과 문화적 성숙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일뿐만 아니라 청계천을 찾는 외국인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조흥은행이 청계천 문화 공간 조성을 위해 기증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로 선보인 정조반차도는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 있는 장통교를 중심으로 좌안 옹벽에 설치됐으며, 길이 186m, 높이 2.4m의 작품이 병풍처럼 청계천을 휘감고 있다.
청계천 정조대왕의 원행을묘정리의궤 설명 중인 이상순 선생
숨겨진 이야기들
피맛골: 서민의 삶이 숨쉬는 골목
종로의 좁은 골목길을 걸으며, 우리는 피맛골의 역사에 대해 들었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종로에 있던 좁은 골목길로, 그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백성들이 고관대작의 말을 피해 다니던 길이라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조선 도시계획의 일환으로 조정에서 의도적으로 만든 길이라는 설이다.
피맛골은 지배권력으로부터 숨을 수 있는 은신처 역할을 했으며, 동시에 서민들의 음식점과 술집이 밀집된 해방구였다. 팥죽집, 떡집, 선술집, 색주가 등 서민들의 일상 공간이 집중된 곳이었다. 특히 선술집은 피맛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시대별로 피맛골의 의미도 변화했다. 60년대까지는 주객들이 정취를 즐기는 장소였다면, 70~80년대에는 유신체제와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청년들이 모이는 공간이 되었다. 필자 역시 직장 초년생 당시 박봉이라 동기들과 친구들의 모임 장소로 1차는 보통 피막골 생선구이 가게에서 시작해서 인사동에서 2차, 포장마차에서 3차를 했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서순라길의 변화
종묘 주변을 순찰하던 서순라길은 최근 젊은이들의 메카로 변모했다. 과거 종묘를 지키기 위한 순라군들이 걸었던 이 길이 어떻게 현대의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었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들으며 우리는 도시의 끊임없는 진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보행자 중심의 도로와 오래된 술집은 그대로 있으면서 새로운 한옥 카페, 레스토랑, 갤러리, 공방 등이 들어와 젊은 세대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서순라길에 있는 한옥카페
익선동의 활기
익선동은 100년 가까이 된 한옥들이 모여있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마을로 기존 한옥을 허물지 않고 현대적 감각으로 재탄생시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우리가 익선동에 들어서자, 한국인과 외국인이 섞여 광장에 모인 사람들처럼 활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곳은 마치 가을 단풍으로 물든 숲처럼 활기찼다. 젊은이들의 웃음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단풍잎 같았고, 그들의 열정은 가을의 따스한 햇살 같았다. 우리는 그 활기 속에서 조용한 루프탑으로 올라갔다.
가을, 그리고 우리
10월 중순의 밤하늘에 떠오른 보름달은 마치 우리만을 위해 준비된 무대 조명 같았다. 그 달빛 아래에서 우리는 역사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의 경험과 생각들이 모여 오색찬란한 가을 숲을 이루는 듯했다. 우리의 대화는 마치 가을 산의 다채로운 색깔처럼 깊이와 아름다움을 더해갔다.
밤이 깊어갈수록 몇몇은 떠나갔지만, 남은 이들의 마음속에선 여전히 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어갔다. 루프탑을 내려와 거리의 포장마차에 자리 잡았을 때도, 우리의 대화는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가을 길처럼 계속되었다.
루프탑에서 종묘 이야기를 해주시는 선생님
시간을 초월한 공존
그 순간 깨달았다. 우리도 어느새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는 것을. 각자의 삶과 경험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치 떨어진 단풍잎들이 땅에 내려앉아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이야기와 감정들이 익선동의 밤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이렇게 우리는 가을이 되었다. 단순히 계절의 변화가 아닌, 우리의 마음과 기억 속에 깊이 새겨진 가을. 그 찬란한 색채와 깊이 있는 정취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우리는 서서히 밤의 끝자락을 향해 걸어갔다.
이날의 여정을 통해 우리는 한양에서 서울로, 500년의 시간을 넘나들며 도시의 숨결을 느꼈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어찌 산과 나무만 가을빛으로 물들겠는가. 우리의 삶과 이야기, 그리고 이 도시의 역사 또한 아름다운 가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덕수궁에서 시작된 한양 도시길에 광화문을 거쳐 청계천 그리고 당시 서민들이 살고 있던 피맛골과 서순라길, 익선동을 걸으며 우리는 서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경험했다. 이 길들은 단순한 통로가 아닌, 시간의 흐름과 사람들의 삶이 켜켜이 쌓인 살아있는 역사였다. 우리는 이 길을 걸으며 조선시대 임금과 서민들의 애환, 근대화 시기의 격동, 그리고 현대의 활기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이 여정은 우리에게 도시의 변화와 지속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다. 피맛골이 재개발로 인해 일부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여전히 서울 곳곳에 살아있다. 서순라길과 익선동이 새로운 모습으로 변모하면서도 과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변화와 지속의 균형 속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날의 경험은 우리에게 도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우리가 걸은 길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수많은 이야기와 기억이 담긴 살아있는 역사였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역사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가을밤, 익선동의 포장마차에 앉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되새겼다. 우리의 대화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었고, 우리의 마음은 이 도시의 리듬에 맞춰 뛰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느끼고, 그 일부가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