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디지털 금융 패권을 둘러싼 전초전
현재, 전 세계는 새로운 금융 질서의 탄생을 목도하고 있다. 전통적인 화폐 시스템이 디지털화의 물결 속에서 변화를 강요받는 가운데, 특히 스테이블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미래 금융 패권을 좌우할 핵심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선 것은 다름 아닌 미국이다. 2025년 7월 14일부터 18일까지, 미국 하원은 이른바 '암호화폐 주간(Crypto Week)'을 선포하며 디지털 금융의 전략적 포석을 마련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진보를 넘어, 21세기 글로벌 금융 시장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는 미국의 거대한 야망이 담겨 있다.
미국이 추진하는 GENIUS법, CLARITY법, CBDC 금지법으로 이루어진 '코인 3법' 패키지는 가상자산 시장의 제도권 편입을 가속화하고, 달러의 디지털 지배력을 확장하려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처럼 국제 금융 환경이 급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한국은 이러한 변화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가?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이 디지털 금융 강국으로 도약할 기회를 포착할 것인지, 아니면 뒤처져 타국의 디지털 금융 식민지로 전락할 것인지를 결정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이자 금융 주권 사수의 핵심 전략이다.
미국의 '크립토 위크'는 단순히 가상자산 시장을 '합법화'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이는 연방 규제 하의 허용 및 엄격한 감독이라는 훨씬 더 정교한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6월 17일 상원을 통과한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을 연방 차원에서 허용하되, 매우 엄격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요구한다. 은행, 신용조합, 연방 및 주 인가 기관만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제한하며, 100% 현금 또는 미국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 담보, 월간 감사, AML(자금세탁방지) 준수, 그리고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완전 금지라는 조건을 부과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스테이블코인의 신뢰성과 안정성을 극대화하려는 의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8월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8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26년 초부터 본격적인 연방 규제 프레임워크가 가동될 예정이라는 점은, 이것이 단순한 허용이 아닌 새로운 디지털 금융 감독 체계의 탄생을 예고한다.
미국 전략의 핵심은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는 금지하면서 스테이블코인은 허용하는 역설적인 접근법에 있다. 'Anti-CBDC Surveillance State Act'라는 법명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정부의 직접적인 디지털 달러 발행이 야기할 수 있는 금융 감시 우려와 은행 비중개화 위험을 피하려 한다. 대신 민간 기업이 엄격한 규제 하에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도록 함으로써,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도 국가의 지정학적 목표, 즉 달러 지배력 확장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민간 옷을 입은 디지털 달러'인 셈이다. 정부가 직접 나서지 않으면서도 달러의 디지털 확산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우회적이고도 극도로 정교한 전략이다.
이러한 미국의 움직임은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비트코인이 12만 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한 배경에는 바로 이러한 미국의 입법 기대감이 핵심적으로 작용했다. 제도권 진입이 가시화되면서 기관 및 개인 투자자들의 신뢰가 크게 높아졌고, 트럼프 행정부의 친(親) 암호화폐 정책, 규제 명확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등 정책 변화가 투자 심리를 자극했다. 블랙록 등 대형 기관의 비트코인 현물 ETF 보유량 증가와 거래소 내 비트코인 보유량 감소 같은 공급 충격도 가격 상승을 견인했다. 비트코인이 12만 달러를 돌파하며 시가총액 기준 세계 5위 자산에 오르는 등, 더 이상 변방의 투기 자산이 아닌 글로벌 금융시장의 핵심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재정 적자, 인플레이션, 금리 인하 전망 등 거시경제 불확실성 속에서 비트코인이 금과 함께 전략적 헤지 자산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그 의미를 더한다. 암호화폐 시장 전체 시가총액이 4조 달러를 돌파하며, 시장 규모와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적 움직임은 한국에게 단순한 남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 안보 차원의 심각한 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이미 국내 무역 거래에서 스테이블코인의 활용이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동대문 등 일부 소상공인들 사이에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무역거래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신호다. 이는 원화 결제 시스템이 우회당하기 시작했다는 명백한 증거이며,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더욱 위험하다.
미국 스테이블코인이 본격 확산되면 한국은 세 가지 치명적인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첫째, 통화정책의 무력화다.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가 직접 경고했듯이, 스테이블코인 확산은 한국은행의 금리 조절 등 통화정책의 효과성을 현저히 저하시킬 수 있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면, 물가 안정과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 수단이 제약을 받게 될 것이다.
둘째, 자본 유출의 가속화다. 국내 자본이 원화를 이탈하여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빠져나가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심화되고, 이는 곧 외환 시장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사시 대규모 자본 유출은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으며, 외환 위기의 재연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셋째, 금융 주권의 잠식이다. 결제 및 송금이라는 금융의 핵심 인프라가 미국 기업들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이루어진다면, 한국의 금융 시스템이 타국 기업에 의해 통제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는 국가 경제의 혈관이 타국에 의해 관리되는 것과 다름없으며, 비상 상황 시 국가적 통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심각한 금융 주권 훼손 문제이다. 한국의 높은 대외의존도를 고려할 때, 이는 단순한 기술 변화가 아닌 국가 생존이 걸린 문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금융의 혈관이 타국에 의해 통제당하는 상황을 절대 방관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강력한 해법은 바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이다. 미국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달러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것처럼, 한국도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고 금융 주권을 수호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한국의 준비 상황은 심각하게 부족하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 내부의 권한 갈등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DABA)은 5억 원의 낮은 자본금으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의 진입장벽을 완화하려 하지만, 한국은행은 과거 테라-루나 사태의 재현을 우려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감독권을 원하고,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관점에서 거부권을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5억 원이라는 자본금이 국제 기준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미국이 은행 수준의 자본력과 엄격한 감독을 요구하는 반면, 한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자본금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겠다는 것은 국제적인 스테이블코인 규제 기준과 비교할 때 매우 미흡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내부 갈등으로 인한 규제 지연은 한국이 디지털 금융 패권 경쟁에서 가장 큰 위험에 처하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이 2026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장을 열면, 그때부터는 미국 룰로 게임이 진행될 것이다. 한국이 제도적 준비를 완료할 시간이 충분히 있지만, 지금처럼 내부 갈등을 지속한다면 이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테라-루나 사태의 악몽이 재현될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뼈아픈 경험이 한국에게 더 안전하고 투명한 스테이블코인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테라-루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으로, 실제 담보 없이 시장 메커니즘에만 의존했기에 붕괴했다. 진짜 스테이블코인은 이와 완전히 다르다. 100% 실물 담보(원화나 국채로 1:1 완전 담보), 실시간 투명성(블록체인 기반 준비금 공개), 엄격한 감독(한국은행과 금융위의 공동 감독 체계)이 핵심이다. 한국은 이미 VAUPA(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암호화폐 규제를 운영하며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 투자자 보호, AML/CFT 등의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테라-루나의 실패를 교훈 삼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한국의 차별화 전략이 되어야 한다.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이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4단계의 체계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1단계: 권한 갈등의 즉시 해결 및 강력한 정책 기구 설립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간의 권한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다. 미국의 GENIUS Act가 도입한 'Stablecoin Certification and Review Committee'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다부처 정책 기구 설립을 검토해야 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이러한 모델을 제안한 바 있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 영향 평가와 거부권을, 금융위원회는 일상적인 감독과 인가 업무를 담당하는 명확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더불어, DABA의 5억 원 자본금 기준은 국제 기준에 맞춰 상향 조정되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과 신뢰성은 발행사의 재무 건전성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2단계: 신뢰 기반 규제 프레임워크 완성
국제적으로 가장 엄격하고 투명한 규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실시간 준비금 공개 시스템 구축: 블록체인의 투명성을 활용하여 발행사가 보유한 담보 자산 현황을 실시간으로 공개해야 한다. ▲발행사 파산 시 24시간 내 상환 보장: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여, 발행사의 문제 발생 시 신속한 자산 상환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 법적 금지: 테라-루나 사태의 교훈을 바탕으로, 담보가 없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발행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 ▲해킹 피해 시 보험 적용 의무화: 디지털 자산의 특성상 발생할 수 있는 해킹 위험에 대비하여, 발행사가 보험에 가입하도록 의무화하여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
3단계: 글로벌 호환성 확보 및 K-콘텐츠 연계 강화
한국형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확산을 위해서는 기술적 호환성과 생태계 확장이 필수적이다. ▲이더리움, 솔라나 등 주요 블록체인과의 호환성 확보: 다양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활용될 수 있도록 기술적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국제 AML/CFT 기준 완전 준수: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등 국제 기구의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 조달 방지 기준을 완벽하게 준수하여 국제 금융 시스템과의 신뢰를 쌓아야 한다. ▲K-콘텐츠 결제 생태계와의 전략적 연동: 글로벌 팬덤을 보유한 K-POP, 드라마, 게임 등 K-콘텐츠 플랫폼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이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글로벌 사용처를 자연스럽게 확대하는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4단계: 전략적 얼라이언스 구축 및 산업 생태계 조성
개별 기업의 경쟁을 넘어, 국가적 차원의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들이 컨소시엄 형태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확대하여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핑거 등 국내 유수의 빅테크 기업들이 참여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얼라이언스'를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얼라이언스는 기술 개발, 표준 제정, 마케팅 및 글로벌 확산에 있어 시너지를 창출하여 개별 경쟁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후발주자의 역설적 우위를 활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테더(USDT), 서클(USDC) 등 대형 스테이블코인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어 규제 전환기에 기존 업체들의 저항이 클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기준으로 시작할 수 있다. 한국만의 차별화 포인트는 세계 최고 수준의 투명성(실시간 준비금 공개, 블록체인 기반 투명성), 완벽한 소비자 보호(24시간 상환 보장, 보험 적용, 슈퍼 우선권), K-콘텐츠 연계 가능성, 그리고 아시아 디지털 금융 허브로서의 잠재력이다. 무엇보다 '속도'가 아니라 '정밀함'으로 승부해야 한다. 미국보다 늦게 시작하더라도, 더 안전하고 더 투명하고 더 혁신적인 스테이블코인을 만들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미국은 이미 디지털 화폐 전쟁의 룰을 정하기 시작했고, 한국은 아직도 내부 갈등과 미흡한 준비 상황에 발목이 잡혀있다. 하지만 절망할 이유는 없다.
우리에겐 과거 테라-루나 사태의 뼈아픈 실패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 세계 최고 수준의 암호화폐 규제 노하우(VAUPA), K-콘텐츠라는 세계 유일의 독보적 자산, 그리고 일부 은행들이 이미 추진 중인 컨소시엄 움직임 등 강력한 자산들이 있다. 무엇보다 후발주자로서 시행착오를 줄이고, 더욱 완벽하고 안전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역설적 우위'의 기회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정책은 연방 규제 하의 허용 및 엄격한 감독이다. 한국은 이를 벤치마킹하되, 우리만의 강점과 특수성을 살린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 내 권한 갈등의 즉시 해결, 신뢰 기반의 엄격한 규제 프레임워크 완성, 글로벌 호환성 확보, 그리고 전략적인 산업 얼라이언스 구축이라는 4단계 대응 전략을 신속하고 정밀하게 실행해야 한다.
시간 계산을 정확히 해보면, GENIUS Act가 8월에 서명되면 18개월 후인 2026년 초부터 본격 시행된다. 즉, 미국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기까지는 물리적으로 충분한 시간이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을 보면 법안 정비, 감독체계 구축, 산업 얼라이언스 형성 등 모든 준비가 미흡한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서로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다투는 사이에 귀중한 준비 시간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위기다. 핵심은 미국 시장 개방 전에 한국의 제도적 기반을 완벽하게 완성하는 것이다.
디지털 화폐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국의 'Crypto Week'가 보여주듯, 이것은 단순한 기술 경쟁이 아니라 21세기 금융 패권을 결정하는 거대한 전쟁이다. 한국이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는 바로 지금, 정확히 지금 이 순간의 선택과 실행에 달려 있다. 정부는 권한 갈등을 즉시 해결하고, 기업은 과감하게 얼라이언스를 구성하며, 국민은 이 거대한 변화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18개월 후, 우리는 디지털 금융 강국이 되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가 되어 있을 것인가. 선택은 오롯이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