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저려서 못 일어나겠어요..."
단체기합이 끝나고 일어서려던 친구가 한 말이다.
친구는 울면서 웃고 있었다.
친구야, 하나만 하렴...
데코타일도 깔리지 않은 차가운 실습실 바닥.
디자인과 여학생들만 모여 2시간을 넘게 무릎 꿇고 앉아 단체 기합을 받았다.(4시간이었던가...?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꼭 그렇게 딱딱하고 차가운 바닥에 교복치마를 입은 애들을 무릎 꿇려 놔야 했을까?
남학생들도 어딘가에서 기합을 받았다는데 뭘 어떻게 받았는지는 모르겠다.
몇 시간 동안 이어진 선생님의 훈계는 기억나지 않는다.
또, 왜 이런 기합을 주게 되었는지에 대한 선생님의 두루뭉술한 설명만으로는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분위기가 안 좋다 뭐 이런 식의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그 분위기라는 건 어디에서 어떤 근거로 도출되는 걸까?
수박 겉핥기라는 표현을 자주 하시던 선생님의 의사 전달 방식은 나처럼 단순하고 눈치 없는 아이에게는 잘 와닿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으니 당연히 화가 났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잘못한 것도 없고 말썽을 부릴 배짱도 없고 방법도 모른다.
어릴 때부터 맞는 것을 소름 끼치게 싫어했던 나는 무조건 시키는 대로 했으니까.
내가 왜 이렇게 차갑고 딱딱한 바닥에 몇 시간을 무릎 꿇고 앉아 있어야 하는데?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피도 안 통하는 다리를 억지로 펴려고 애를 써야 하는데?
왜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데?
왜?
나는 아픈 게 제일 싫은 사람이다.
어릴 때 각인된 폭력의 공포가 학대 수준으로 남아 아직도 엄마와의 양가적인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이래서 뭐가 얻어지는 걸까?
교육적인 효과나 학교의 질서 이런 거 다 집어치우고 그냥 아프다.
아픈 게 미치도록 싫고 폭력이 무섭다.
맞는 것도, 단체기합도 싫다.
그런데 친구는 속도 좋다.
아프면서, 울었으면서, 일어나려다 다시 주저앉더니 웃는다.
선생님도 내내 인상 쓰고 훈계하시고 화내시더니, 친구를 보며 웃는다.
선생님이 친구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다.
이 얼마나 가슴 따뜻한 장면인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그런데 나는 뭐지?
쿨하고 너그럽게 웃어넘길 일을 끈질기게 화내는 내가 옹졸한 건가?
이 날 내 감정의 노선을 어디로 정해야 했을까?
나는 삐져나오는 감정을 애써 감췄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단체기합으로는 모자랐나 보다.
일기장에는 실장과 부실장이 대표로 맞았던 날의 기록이 있었다.
3월 17일
아침부터 맞은 실장하고 부실장 참 불쌍하다.
우리들 때문에…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억울할 거야…
이제부터 애들 조용히 시키는 방법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중략...
이렇게 하면 정말 효과가 있는 걸까?
실장이 맞고 나서 '아, 내가 더 잘 챙겨야겠구나!' 하고 자아성찰을 하고 더 바르게 이끌어갈까?
아! 아니구나.
반애들한테 죄책감을 심어주고, 그래서 말 잘 듣게 하려고 임원들을 이용하는 거구나!
두 명 때려서 군기 잡으면 효율적이니까.
이런 식의 계산인가?
이건 사실... 이간질 아닌가?
'어이 실장, 반애들이 밉지? 너도 흑화 해서 애들을 쥐 잡듯이 잡아라!'
이런 느낌?
폭력 앞에 손발이 떨리는 내 사고는 꼬일 데로 꼬인 추측만 나왔다.
어떤 것이든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 아이들 마음속에는 반항심만 더 커지는 것이 아닐까?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폭력이 당연시되는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그 시절, 으레 그래왔지만.
그 시절, 두드려 맞던 입장에서는 좋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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