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을 깬 독서, 양파의 음악과 함께

by 윙글

3학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상 자리를 바꾸게 됐다.

그런데 뒷자리에 앉은 남학생이 범상치가 않았다.

우리 학년에서 유명한 싸움꾼이었다.


친구들에게 들은 목격담도 있었지만 내가 직접 본 일도 있었다.

점심시간? 쉬는 시간?

어쨌든 수업시간이 아닌 어느 때, 복도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다다다다.


교실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무심결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유리창 너머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형체를 봤다.

그것은 누군가를 업고 뛰어가는 남학생이었다.

업혀있는 아이의 머리와 어깨는 피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TV나 스크린으로 보는 것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피를 흘린 채 업혀가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저 아이는 어쩌다 저렇게 됐을까...?

나는 머지않아 그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됐다.


내 뒷자리 남학생이 저 아이와 싸워서 그렇게 됐다는 소문.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 저렇게 피가 많이 난다고?

그것도 머리에서?

그런데 그렇게 만든 사람이 날마다 내 뒤에 앉아 있다고?


그날부터 나는 뒤통수가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 있는 아이다.

조심하자...

고개를 돌리기가 부담스러웠다.

최대한 눈을 안 마주쳐야지...


하지만 앞뒤 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어떻게 말 한마디 안 할 수가 있겠는가.

한 마디씩, 두 마디씩 뒷자리 남학생과 대화를 나눴다.

어라? 생각보다 상냥하네?

아니, 다른 남학생들보다 더 부드러운 말투라고 느꼈다.


나도 모르게 조금씩 허물어져가는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진 계기가 있었으니...

그건,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그 아이의 모습이었다.

남학생은 독서를 즐겨하는 아이였다.

당연히 공부는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독서는 좋아했다.


흘끔거리는 나에게 책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집에 책이 많다고 얼마든지 빌려준단다.

나는 고맙게 빌려 읽기 시작했다.


그때 그 소설책과 함께 즐겨 들었던 음악이 양파의 앨범 A'ddio(아디오)였다.

당연하게도 그 후로는 양파의 음악을 들을 때면 자연스럽게 그 소설과 그 남학생이 떠오른다.

melon_양파앨범아디오_원본.jpg A'ddio(아디오) 앨범(출처: 멜론)


책뿐만이 아니었다.

남학생은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어떤 분야의 소재를 꺼내도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문화에 관련된 방대한 지식이 어떤 종류의 대화를 나누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신이 났다.


수다 떨기 좋아하는 내가 어떤 이야깃거리를 꺼내도 막힘없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만 나면 수다를 떨었다.

처음의 두려움 따위는 온데간데없었다.

소설책은 시리즈가 모두 끝날 때까지 빌려 읽었다.


내 편견과는 다르게 수다 떠는 것도 좋아하고 웃음도 많은 아이였다.

늘어가는 수다와 함께 많이 친해졌구나 싶었을 즈음, 나는 질문을 했다.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업혀가던 그 아이를 정말 네가 그런 것이 맞느냐고.

왜 그렇게 된 거냐고.


뒷자리 남학생은 답했다.

그 아이가 우리 과 학생을 반죽음으로 만들어놓고 있었다고.

그래서 화가 났다고.

같은 반 친구가 맞고 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는 친구들한테 화가 났다고.

그래서 끼어들어 업어치기를 했는데...

그 한번의 업어치기로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나의 의문은 풀렸다.

믿기 힘들지만 그 사건의 범인은 뒷자리 남학생이 맞았다.

남학생은 싸움을 잘했다.

의도한 것보다 더 큰 결과로 돌아올 만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남학생들의 의리는 그런 것일까?

친구가 맞고 있으면 달려가 함께 싸우는 것?

아무도 친구를 돕지 않으면 화가 나는 것?


이 아이는 자꾸 싸움에 휘말리고 의도한 것보다 남을 다치게 하는 아이구나.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싸움에 끼어들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돼버리면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주변에서는 어떤 눈으로 바라볼까?


나부터도 색안경을 끼고 무시무시한 아이라고 경계하기 바빴는데...

친근하게 책을 빌려주는 아이에게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편견은 지난번 보다 조금 더 크게 금이 가고 있었다.


커버 사진 출처: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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