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
한국종합예술학교를 줄여 한종이라고 부른다.
3학년이 될 즈음, 아이들은 진로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대학에 가려는 아이도 있었고 취업을 하려는 아이도 있었다.
너의 선택지는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 같다.
대학에 진학하는 것.
1학년 때부터 화실을 다니기 시작했던 너는 그때쯤, 화실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늘어있었다.
그리고 네가 목표로 잡은 대학은 한국종합예술학교였다.
나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곳이었다.
대체 한종은 어떤 곳이야?
내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했는지, 너는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했다.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곳이란다.
실기시험이 특이한 곳.
학생들은 더 특이한 곳.
꼭, 꼭 가고 싶은 곳.
너는 정말 열렬하게도 그곳을 꿈꿨다.
일기장 여기저기에 한종 시험을 준비하는 너의 마음과 노력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지금 돌아봐도 너는 정말, 한 곳만을 바라보면서 긴 질주를 한 것 같다.
사실 나는 애매한 상태였다.
버스 정비일을 하시는 아버지의 외벌이로 삼 남매를 키우는 집에서 대학을 모두 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워 보였다.
언니는 첫째니까 당연히 보내야지.
심지어 인문계에 다니고 있으니 대학 말고 선택지도 없다.
동생은 아들이다.
아들은 무조건 보내는 게 당연한 일.
그럼 나는?
나까지 꼭 대학에 가야 할까?
집안 뿌리를 뽑으면서?
대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아빠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몸을 갈아서라도 너희들 대학 보낸다."
읊조리듯 하셨던 말씀은 아빠의 의지였고 나름의 사랑이었으리라.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싶었던 아빠의 말 한마디는 속 없는 딸을 안심시켜 주기도 했다.
아빠가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 한마디에 현실에서 완전히 눈을 돌릴 만큼 내 시야가 좁지는 않았다.
부모님의 희생을 밟고 대학 문턱을 넘기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고민의 끝에 서있던 나는 생각만 하지 말고 움직이기로 했다.
알아보기만 할까?
그래, 한 번 돌아다녀보자.
알아보는 건 공짜니까...
나는 입시미술을 알아보기 위해 화실을 다니며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대학에 대한 꿈이 조금씩 고개를 들었다.
1999년 12월 1일
너도 화실 다니면 참 멋있어지겠다. 너 끼 있는 녀석이잖냐. 그렇지? 넌 정말 잘할 거야.
네가 남긴 응원의 말이 일기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화실에 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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