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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Dec 09. 2020

너머를 보는 사람

마흔번째 이야기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소설 「이런 이야기」의 내용을 다룹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579111


시인은 현미경으로 보든, 망원경으로 보든, 언제나 같은 것을 보는 것이다.
「공간의 시학」, 가스통 바슐라르 



몽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작은 것에서도 우주를 발견한다. 과거와 현재를 보고 미래를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무언가를 보고, 그 반대편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들은 몽상을 하는 자들이며, 사색을 하는 자들이다. 건축가 최욱과 그에게 감명을 준 소설 「이런 이야기」 속의 울티모가 그러하다. 



자동차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직 제대로 된 길도 없는 시기, 국경을 넘어가며 진행되는 레이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차를 탄 사람, 레이스를 구경하는 사람,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많은 이들이 새로 나온 기계 때문에 목숨을 내놓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괴물 같은 소리를 내는 새로운 기계에 열광했다. 울티모의 아버지는 이런 시기에 소를 팔아 차를 고치는 정비소를 차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수의 부자들만 차를 가질 수 있었기에 시골에 위치한 이 정비소가 잘 될 리가 없었다. 



울티모는 금빛 그늘이 서린 아이다. 금빛 그늘이 서린 사람은 본인이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아는 사람이다. 울티모는 우연한 기회로, 혹은 운명이었을 수도, 차를 타게 되고, 길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울티모는 차를 보고 길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울티모에게 길은, 서킷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그래서 그가 만든 서킷은 후에 그의 사랑 엘리자베타에 의해 발견되었을 때 반년의 보수 공사가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18개의 굽이마다 인생의 이야기가 느껴졌다. 사고 당한 아버지를 보기 위해 빨리 직선 도로를 빨리 달렸던 울티모의 어린 시절이, 참혹했던 참전 기억이, 그리고 그의 사랑 엘리자베타에 대한 기억이 길에 있었다. 사람이 만든 무언가에서 그 사람의 혼이 느껴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과연 그게 가능하긴 할까. 



울티모는 먼저 서킷을 만들고, 그 다음에 그림을 그린 것이었다.
또한 그가 서킷을 그린 것은 그녀를 위해서였다.
「이런 이야기」, 알렉산드로 바리코



빛을 들이는 데 있어서 창만큼, 혹은 창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건축가 최욱은 묻는다. 그의 답은 벽이다. 빛을 들이는 것이 있다면, 빛을 받는 것도 있다. 창이 빛을 들이면, 그 빛을 받는 것은 벽이다. 벽은 빛의 존재를 느낄 수 있게 한다. 그런 의미로 건축과 최욱과 울티모는 같은 존재다. 창을 보면서 머릿속으로는 벽을 그리는 사람이고, 차를 보며 길을 만드는 사람이다. 항상 가시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너머를 보는 사람이다. 균형감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빛과 그림자는 긴장 관계에 놓여있다. 빛을 생각할 때, 그림자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과 다르게 건축은 그 태생이 사회에 있다. 그럼에도 한 건축가의 작업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관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평상시에 느끼던 바를 공간으로 구현했기에 그러할 것이다. 같은 필지에, 같은 용도의 건물을 짓는다고 해도 이를 구상하는 것은 결국 개인이기에, 그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울티모의 길에서 그의 삶이 느껴졌던 것처럼, 공간을 보고 역으로 그 공간을 상상한 사람을 그릴 수도 있는 것이다. 



과연 내가 그리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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