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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memike Dec 16. 2020

도시 단상

마흔두번째 이야기


정도전의 한양, 코르뷔지에의 300만을 위한 도시, 그리고 얼마 전 계획이 드러난 3기 신도시. 도시의 역사는 늘 그림과 함께 했다. 과거에는 정도전과 코르뷔지에처럼 도시의 큰 흐름을 구획하는 개인이 있었다. 하지만 도시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작은 계획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계획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도시는 욕구의 표출이며, 집합의 산물이다. 그래서 도시를 보면 그 집합의 실루엣을 가늠할 수 있다. 여기서는 이름 모를 두 개의 도시의 실루엣을 들춰보고자 한다. 



A 도시는 계획 도시이다. 필지가 만들어지기 전, 혹은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 길이 먼저 들어섰다. 그래서 이곳은 우리나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구불구불한 도로의 모습을 찾기 힘들다. 수도의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대량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대차게 일직선으로 그어진 길 사이로 단지가 구성되었고, 단지마다 학교를 지었다. 수도권에 일터를 잡은, 혹은 잡고자 하는 사회초년생들이 대거 유입되었고, 그만큼의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병원, 상가, 공원, 유흥시설 등 도시의 기본 요소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지어졌다. 도시 곳곳에 축성이 강한 공원과 광장이 있어 월드컵에 대한 희망이 있던 시절에는 광장이 붉은 옷으로 가득 차기도 했다. 다만, 모 건축가의 말처럼 도시 전체를 위한 큰 공원이 있지만 주거 단지와 공원 사이 대로가 위치해 공원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운 점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또 집을 막 구한 사회초년생의 자녀를 위한 사교육 시장도 도시의 일부로 자리잡았다. 대로 양 옆으로 자녀를 위한 학원과 학부모를 위한 카페가 즐비한 학원가도 생겼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과거의 일부일 뿐이다. 아마 우리나라 교육 제도의 개편으로 인해 도시의 모습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 넘쳐나던 태권도장과 피아노 교습소는 확연히 줄었으며, 한 교실에 100명씩 들어가던 대형 학원은 소규모의 학원으로 분화되었다. 과거 영화관과 엄청난 수의 식당을 내세우며 화려한 간판으로 도시의 젊은 층을 유혹했던 거리는 주말이 되어서야 옛날의 붐비던 모습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저층의 주택 단지를 중심으로 ‘~리단길’의 복제품이 도시의 핫플레이스가 되고 있다.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골목 상권도 난관에 봉착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결국 다시 공원을 찾기 시작했다. 



B 도시는 비교적 오래된 도시다. 정부의 여러 청사들이 위치한 지역으로 행정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다. 예전에는 무슨 일만 있으면 다른 지자체 공무원이 이곳으로 출장을 왔다고도 하는데 요즘은 주변에 신도시도 많고, 온라인 네트워크가 발달해 각 지자체 내에서 업무를 소화시키고 있는 듯하다. B 도시는 신도시와 다르게 길이 어렵다. 차를 타고 처음 오는 사람이면 신호 체계와 차선 때문에 당황하기 쉽다. 하천이 있어 이를 중심으로 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보행자의 입장에서 구불구불한 길과 하천의 산책로는 정감이 갈 만한 요소이지만 그런 기분이 잘 들지는 않는 도시다. 경전철을 이용해 도시 내의 연결을 도모하고자 했으나 경전철의 그림자가 도로에 드리워져 도시 전체가 어두워지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또 낙후한 곳과 백화점이 위치한 상업 지구의 크기는 대조가 극명하다. 도시 전체를 봤을 때 크기, 혹은 높이와 밝기의 측면에 있어서 차이가 심하다. 



식당을 보자. B 도시는 유난히 백반집이 많다. 아침 장사를 한다는 간판을 내건 식당이 이렇게 많은 곳을 처음 봤다. 이는 아침에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건설 현장이 많아 새벽부터 일을 하고 아침과 점심을 일터에서 해결하는 인구가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또 이곳은 곱창을 파는 식당이 유난히 많다. 그 중에서도 돼지 곱창을 이용한 곱창 볶음과 알곱창이 주메뉴를 이룬다. 이 두 메뉴는 술을 부른다. 삶의 애환이 많은 도시일까. 쉽게 판단하고 싶지는 않기에 도시별로 주류 섭취량을 비교하는 자료를 한 번 확인해보고 싶다. 어느 도시든 그렇지만 유흥가와 숙박 업소는 매일 밤을 밝힌다. 그런 곳이 유난히 눈에 보이는 도시다. 그와 달리 신 주거 단지가 형성되는 곳은 여느 신도시와 다름없이 흔한 상가 건물과 아파트로 가득하다. 인적이 드문 곳에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수준의 도서관을 짓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도시는 욕구의 표출이며, 집합의 산물이다. 그래서 도시를 보면 그 집합의 실루엣을 가늠할 수 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두 도시의 이미지는 모두 한 개인의 얄팍한 판단일 뿐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기록이고 단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렇게 도시에 대한 기억을 가끔 남겨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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