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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정 Oct 26. 2023

사랑을 배달하는 기쁨

나와 내 애인. 우리에게는 특별하고도 특이한 법칙이 존재한다. 그건 바로 절대 기념일을 챙기지 않으면서, 무조건 기념일을 챙기는 것이다.


수없이 존재하는 상술이 만들어 낸 날들과 둘만의 시간이 쌓여 생기는 이벤트, 그리고 서로가 태어난 날. 이런 기념일을 다 챙기려면 일 년 내내 정신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만난 지 2년 즈음 넘어갈 때부터 서로의 경제 사정을 고려해‘이번엔 기념일 챙기지 말고 넘어가자’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물론 서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같이 맛있는 밥 먹고, 함께 보내는 시간으로 만족하자고.


하지만 기념일이 되면 아무 일도 없는 듯 시간을 보내다가도 한쪽이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그럼, 상대방은 깜짝 놀라며 기념일은 챙기지 않기로 하지 않았냐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등 뒤에 숨겨둔 선물을 꺼내고 이번엔 그 상대방이 또 깜짝 놀라며 이런 걸 왜 샀냐며 핀잔한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서로의 행동이 황당하면서도 깜짝 놀라는 얼굴과 기뻐하는 모습이 눈과 마음에 가득 담긴다. 선물이 크던, 작던 상관이 없다. 다만 손 편지 한 장이라도 좋다. 서로서로 잘 알기에, 내 작은 마음에도 크게 감동할 애인을 믿기에. 우리는 그 예쁘게 피는 얼굴을 보기 위해 부담 갖지 않고, 설렘으로 선물을 준비한다.


우리의 생일은 같은 2월에 있는데, 내가 먼저 ‘생일이 너무 붙어있으니까 이번엔 서로 선물을 주지도, 받지도 말기. 어때?’ 라고 물었고 애인은 ‘그거 좋다!’라며 절대 선물을 사지 않겠다고 큰소리쳤다.  2월 초에 내 생일이 먼저 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평소 갖고 싶었던 카디건을 짠하고 건네었다. 내 취향을 생각하고 선물을 골랐을 시간과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덕분에 행복하고 따뜻한 생일을 보낼 수 있었다. 선물을 주면서도 남자친구는 ‘나는 절대로 선물 받고 싶지 않으니까, 선물사면 환불할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선물을 받아서 줘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낄까 봐 하는 얘기였다. 하지만 내 계획은 이미 그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리고 3주쯤 후, 계획을 실현할 남자친구의 생일이 찾아왔다. 나는 한 달 전부터 머리로 그날을 떠올리고 계획했다. 그 과정 자체만으로 얼마나 설레던지 그때 쓴 계획을 편지처럼 써두기도 했다.



[당신에게 줄 꽃다발을 살 것입니다.

꽃은 늘 받기만 했던 터라 어떤 꽃을 좋아할지 몰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꽃다발을 채울게요. 당신의 마음이 내 마음과 같기를 바라면서요. 당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가방도 샀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의 가방도 샀습니다.

’선물 같은 거 안 줘도 된다고 말했잖아‘라며 핀잔을 주면서도 동그래지는 눈동자와 숨길 수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떠올립니다.


와인도 한 병 준비할게요. 늘 내 취향에 맞춰 달콤한 와인을 마셨던 우리지만, 오늘만큼은 당신이 좋아하는 레드와인으로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을 담은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이거 하나면 된다고 말하는, 한 자씩 마음을 눌러 담은 편지를 전할게요]




케이크와 꽃다발, 작은 선물과 와인. 그리고 마음을 담은 손 편지. 이 소박함으로 가장 행복한 하루를 보낼 그날을 떠올리고 또 떠올리며 나는 자주 행복했고, 설레었다. 그리고 철저했던 내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또 다 알면서도 아무것도 몰랐던, 기대하면서도 전혀 실망하지는 않는 그런 기억을 남겼다.


늘 하는 서프라이즈지만 서로에게 언제나 새롭고 즐겁다는 게, 쉬운 일 같지만, 사실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만큼 잘 통하는 우리는 어쩌면 천생연분일까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웃는다.


누군가는 우리의 방식이 모순적이고 별나다고 할지 몰라도,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며 기쁨을 나눌 것이다. 따뜻한 마음을 숨김없이 나누고 감정에 솔직하면서, 서로의 행복과 또 나의 행복을 위해서. 아낌없는 사랑을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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