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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하정 Oct 01. 2023

당신과 평생 손잡고 다니고 싶어요 #1

#프로포즈

늦잠을 자는 바람에 평소보다 출근을 서둘렀습니다. 자전거를 힘껏 밟아도 땀이 나지 않습니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가을이 바짝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소방서 앞을 지나던 중 제 옆으로 중년의 부부가 걷고 있었습니다. 손을 꼭 붙잡고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멀어지는 뒤통수 너머로 싱그러운 웃음소리가 퍼졌습니다.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침이었습니다.

 

지난 제주 여행 마지막 날, 차 안에서 당신은 문득 울상을 지었죠. 왜 그러느냐고 묻는 말에 돌아오는 대답이 기억납니다.

“나 이 순간이 너무 그리울 것 같아. 벌써 그리워서 슬퍼져.”

하며 한숨을 쉬었지요. 제주에 수도 없이 왔지만, 이번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담담하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습니다.

 

실은 당신이 말을 막 꺼내기 전에, 저도 같은 생각에 빠져있었습니다. 당신은 가만히 운전하며, 나는 하염없이 지나쳐 가는 창밖의 나무들을 보면서 같은 상념에 잠겨 있었나 봅니다. 당신이 입을 떼어 말을 꺼냈을 때, 나는 그저 웃음으로 넘겼지만 내심 놀랐습니다. 우리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스스럼없이 마음을 표현하는 당신의 말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당신은 말에 강한 사람입니다. 낯간지러워 편지나 일기는 쓰기가 어렵다는 당신이지만 솔직한 마음을 느끼는 대로 표현합니다.

“우리 함께 보내는 순간들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져.”

“나 제주도를 사랑하게 된 것 같아.”

처럼 느껴지는 감정들을 바로바로 숨김없이 말합니다. 진심 어린 표정으로 더욱 진심 어린 이야기하는 당신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고마워, 미안해.”

이런 기본적인 말을 할 때도 제 머릿속은 뒤죽박죽 복잡해집니다. 앞뒤 말들을 준비하고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하다 보면 꽉 다문 입술이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집니다.

말이 어렵게 느껴질 땐, 차분히 이야기하는 당신을 떠올리며 한 문장 한 문장 뱉어봅니다. 조목조목 떠오르는 생각들을 말하는 당신을 그리면서 나도 입술 안쪽으로 달싹이는 것들을 표현하려 노력합니다.

 

나는 글에 강한 사람입니다. 낯간지러워 표정이나 진심을 숨기기도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아꼈다가 정성스레 손 편지로 써 내려가는 걸 좋아합니다. 둘만의 기념일, 혹은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날에도 밖으로 표현되지 못하고 마음 깊숙이 간직해 둔 말들을 편지지 위에 적습니다. 텅 빈 종이 위로 온통 진심 어린 마음과 사랑스러운 표현들이 새겨지는 게 좋습니다.

 

글을 잘 써본 적이 없다는 당신은 편지에 어떤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진심이 담긴 편지를 내밀면 곧이어 한 장, 두 장씩 서툰 문장을 이어가며 답장을 써주었습니다. 제가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글이 빼곡히 담아내듯 당신도 따라 진심 어린 마음을 편지지 위에 써 내려갑니다. 이렇게 우리 더욱 닮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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