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자이저
우리가 입양한 강아지는 '밀리'라는 믹스견이다.
춘천의 한 길가 전봇대에 엄마와 함께 묶여 있었다가 구출된 유기견인데, 당시 1살이었고, 1년 정도 임보자 (임시보호를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와 1년 정도 지내다가 독일 우리 집으로 입양되어 오게 되었다. 임보시에 부르던 이름이라 그냥 바꾸지 않았다.
검은색 강아지라서 호불호가 커서 그런지 1년 가량 입양이 되지 않았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쁘다고 하니, 아내도 밀리가 이뻐보였나보다.
아마 아주 어린 나이에 임보자와 함께 지냈고, 임시 보호 시절부터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랐기 때문이었으리라. 첫날 도착한 시점부터 집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배를 뒤집고 이뻐해 달라고 난리였다.
임보시절 침대 생활을 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첫날부터 침대에서 잠을 자겠다고 올라왔는데, 당연히 나는 거절했지만, 첫째 딸은 밀리를 너무 이뻐해서 거절하지 못했다. (결국 첫째가 떠난 지금은 막내딸의 침대에서 자고 있다.)
처음에는 산책이 참 힘들었다. 일단 버터와 같이 나가려고 하면 항상 버터보다 앞서 걸어야 하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로 우리의 걷는 속도와 너무 큰 차이가 나게 앞으로 나가려고 하다 보니 줄에 걸려 캑캑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이제 2년이 지나다 보니 산책은 서로 탬포를 맞추기도 하지만, 낯선 강아지를 마주치면 옛날의 본성이 다시 나온다. 가끔 줄을 풀어주면 정말 미친 듯이 날뛴다. 에너자이저 배터리처럼 지치지도 않는다.
2살에 우리 집으로 입양되어 이제 4살인데, 5살에 입양되어 7살인 버터 오빠를 오빠로 대우하지 않는다. 간식을 뺏어먹는 것은 물론, 먼저 시비(장난)를 걸고 논다. 겁 없이 날뛰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밀리는 참 유기견이지만 사랑받고 자랐구나 생각이 든다.
간식을 만지작 거리면 순식간에 나타나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는다. 몇 번은 우리가 외출한 사이에 식탁 위로 올라가서 햄버거, 초코바 등 닥치지 않고 먹기도 해서 식탁 위에는 아무것도 둘 수 없다. (다른 개들은 그런 거 먹으면 탈 난다던데, 유기견이라 그런지 소화력은 정말 최고다.)
얼마 전에 Chat GPT에 밀리의 사진을 올리고 어떤 종인지 알려달라고 했더니 믹스견이란다. ㅎㅎ 그래도 가장 많이 섞인 종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미니핀이라는 종이라고 한다.
몸집은 오빠의 반도 안 되는 소형견인데, 성격은 어쩜 이렇게 반대인지...
그래도 밀리 덕분에 버터가 많이 바뀌었다. 일단 산책을 안 나가는 버터가 밀리가 앞장서면 뒤따라서 가기도 한다. 처음 1년 동안은 짓지 않던 버터가 밀리랑 장난치다가 짓기 시작했고, 꼬리를 흔들기도 한다.
똥을 싸고 나면 밀리는 뒷발질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이제 버터도 그러고 있다. ㅎㅎㅎ
극 E와 극 I 가 만나면 I 가 E로 조금씩 바뀔 수 있단 사실을 극 E 밀리와 극 I 버터를 통해 배우는 중이다.
밀리야, 지금처럼 그렇게 버터 오빠랑 사이좋게 의지하면서 지내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