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산책
어린 시절 마당에서 키우던 강아지가 있었던 (일명 똥강아지) 기억을 제외하곤 내 인생에 강아지는 없었다.
나의 역할은 그저 먹다 남은 밥을 대충 개 밥그릇에 담아주면 끝이었다.
평생을 강아지를 좋아하거나 키워본 기억도 어린 시절을 제외하곤 없었고, 이미 결혼 후에는 세 자녀를 키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애완동물은 작은 물고기 몇 마리 키우다가 이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죽어서 어항조차 없앤 것이 전부였다.
독일에 이주해 온 이후에도 아이들은 강아지를 외쳤지만, 철벽 방어를 해왔다. 비용도 많이 들고, 부재 시에 혼자 두는 시간도 길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이었다.
예상외의 복병은 아이들이 아니었다. 우연히 아는 가정이 휴가를 가면서 한국에서 입양한 강아지를 1주일 정도 봐주게 되었는데, 아내의 표정이 바뀌었다.
마치 아기를 대하듯 웃으며 상냥한 목소리로 강아지에게 간식을 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어? 집에서 저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인데?'라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우리도 강아지 한 마리 키울까?"라는 말을 건넸다.
자녀들은 이때를 놓칠세라 저마다 약속을 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돌보는 것은 자기들이 돌아가면서 다 할 테니 한 마리 키우자는 것이었다.
'그럴까?'라는 생각이 시작됨과 동시에 아내와 아이들은 인스타 그램에 올라온 유기견 입양 대상 강아지들을 검색하기 시작했고, 검은색 강아지 한 마리를 선택했다. '밀리'라는 이름의 잡종견이었다.
갑자기 강아지가 생겼다.
이제 5인 가족 + 강아지 가정이 되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변수들이 생겼다.
일단, 거의 밀리의 산책을 도맡아 했던 첫째 딸이 다른 도시로 대학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로 떠났다.
둘째도 성인이 되면서 자기의 인생이 바빠졌다. 셋째도 친구들을 만나러 혼자 나가기 시작했다.
아내도 취직이 되었다.
강아지는?
아침, 저녁으로 산책시키는 것은 내 일이 되었다. ㅎㅎ
이것이 너무나도 당연히 예상되는 시나리오임을 깨닫지 못했던 나는 이제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강아지를 데리고 나간다. (특히 밤에는 위험하기 때문에 내가 무조건 나가야 한다.)
눈이 오는 영하의 날씨에도, 비가 아무리 억수같이 내려도, 아침에 한 번, 밤에 한 번 실외 배변을 위해 산책을 나간다. 똥 봉투를 가지고 개 똥을 매일 손으로 집는다.
혹시 입양을 할 예정이라면, 이 부분에 대해서 꼭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개를 사거나 입양하는 순간, 돌봄의 책임은 아이들에게 없다. 돌본다 하더라도 아이들은 언젠가 떠나고 개만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