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중..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은 생각날 때마다 가끔씩 꺼내 다시 들춰보곤 합니다.
'깃털들'은 카버의 글을 처음 접하게 된 작품이지요.
단편집에 제일 먼저 수록되어 있으니 이 작품은 작가의 첫인상이었습니다.
놀라움과 독특함과 경이로움을 한꺼번에 느낀 터라 이 단편이 마음에 새긴 무늬는 각별했습니다.
하루키가 왜 이 작가를 그토록 좋아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지요.
직장 동료인 버드의 집에 초대를 받아 잭과 그의 아내 프랜이 길을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시내에서 20마일 정도 떨어진 교외에서 공작새를 키우며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못생긴 8개월 된 사내아이를 키우는 버드와 올라의 독특한 삶의 방식은 잭과 프랜에게 자신들 삶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만듭니다.
인간의 교만함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 모든 은유를 통해 전해집니다.
'공작'이라는 소재는 '아기'라는 존재의 분신이겠지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애완동물로 묘사됩니다.
아기가 못생겼다는 설정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거만함을 부추깁니다.
마치 나라면 이보다 훨씬 나은 자식을 가질 자신이 있어.라는 식의 오만이지요.
인간을 본질이 아닌 이미지로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은 치아 교정틀 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라의 고르지 못한 치열 석고본은 올라의 자부심입니다.
그 석고본은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가르는 커다란 분기점 이지요.
올라는 그 틀을 바라보며 현재의 소중함을 되새김질합니다.
굳이 흉한 그 치형틀을 TV 앞에 보란 듯이 올려놓은 작가의 의도는 잭과 프랜(사람들)에 대한 조롱으로 느껴집니다.
깊은 이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는 것이지요.
그저 보이는 현상만으로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은 치형틀과 못생긴 아이라는 은유적 장치로 작가는 독자들을 멀리서 관찰합니다.
잭과 프랜은 그날의 초대로 한껏 자신감에 차오릅니다.
이렇게 이상한 가족이라니..
버드 부부를 통해 생겨난 알수없는 자신감은 잭과 프랜에게 계획에도 없던 마음을 품게 만듭니다.
떠나는 그들에게 올라는 공작 깃털을 하나 건네줍니다.
아기를 가지게 됨을 암시하는 장면으로 느껴졌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잭과 프랜 사이에도 아이가 태어나지요.
그런데 진실은 아기에게 뭔가 음흉한 구석이 있다고 아빠 잭은 생각합니다.
궁금증만 던져놓은 채 작품은 마무리 됩니다.
'아이'라는 존재가 족쇄처럼 느껴졌던 작가의 그늘진 삶이 이 작품에서도 엿보입니다.
자신의 굴레에서 오랜 시간 헤어 나오지 못한 작가의 고통은 못생긴 아기와 공작을 통해 발현되고 마치 그 고통을 대물림하듯 프랜에게 깃털을 건넵니다.
자신의 인생조차 여물지 못한 시기에 큰 책임감으로 고통받으며 내적인 갈등으로 고뇌한 작가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작가의 삶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과 생각과 내면을 일상 속에서 평범한 단어들로 은유와 암시 등을 통해 글로 녹여내는 실력은 가히 감탄할 만하네요.
'글'이라는 재료로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빚어내는 이 작가의 능력이 몹시도 부럽습니다.
아.. 이렇게 써야는데요. 글이란 건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