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책모임이 시작된지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코로나로 잠시잠시 쉬어가기도 하였지만 한달에 두 번 멤버들과 함께 읽은 책이 제법 되네요.
혼자 읽기 힘든 책을 선정해 함께 읽기도, 편독으로 치우친 책읽기에서 벗어나기도 하는 장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현재로선 책모임의 단점을 찾기 힘드네요. 배려심이 많은 고운 멤버들 덕분이겠지요.
때론 같은 책을 읽고도 차이 나는 생각으로 의견을 나누게 되기도, 한 마음으로 크게 공감하기도 하면서 동그랗게 마주앉은 시간에 행복을 더합니다. 늘 꿈꾸던 시간이었고, 이룰 수 있게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한 멤버의 제안으로 신형철 평론가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가치에 대한 평가와 비평을 담은 글을 선호하지 않는지라 평론집이나 평론가라는 직업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황현산 평론가의 글을 읽고 생각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요) 옳고 그른 것을 따지다 보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기운으로 기울게 되고, 예민함과 날선 시각의 촉은 긴장 상태로 늘 무장하고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저의 편견이 와르르 무너진 건 이 책을 읽으면서 입니다.
작품에 온기를 더해 반짝반짝 빛이 나게 하는 작업이 그가 추구하는 평론인가 봅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제 안에 감춰 두었던 감수성의 싹이 발아하기 시작하고 눈여겨보지 않았던 작품들에 눈길이 가기 시작합니다. 다른 이들의 작품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인간됨과 덕성을 겸비한 소양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평론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찾아 읽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말이지요.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멤버 각자가 생각하는 '슬픔'에 대해, 그리고 '공부'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들을 풀어보았습니다.
타인의 슬픔을 오롯이 공감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는 것에 대해 모두 수긍하게 되네요.
때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시간'으로 따져보곤 합니다.
'그 정도 했으면 이제 되지 않았어?'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 마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함은 미해결된 엉긴 마음 때문입니다.
그만하라고 다그치는 말은 더한 상처로 새로 생채기를 그어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의 고통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한가?
우리가 그렇게 잔인하다.
43p
내 고통 앞에서 타인의 한마디 말이 잔인함으로 마음 한켠을 차갑게 배어낼 때가 있지요.
그런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습니다.
원하지 않더라도 그 고통 속에 머물 수밖에 없는 시간이 있고, 또 견뎌내야 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곪고 아물다 다시 터지고 덕갱이진 마음에 새 살이 올라올 때까지는 내 안의 싸움입니다.
뱉어놓은 말을 상대는 이미 잊었는데 왜 당한 쪽에선 끊임없이 아파해야 할까요?
억울함은 마음을 병들게 만듭니다.
사람은 아름다운 존재지만 이렇게 잔인한 존재이기도 하네요.
'완전함'과 '온전함'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333p
늘 생각해오던 주제입니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이었지요.
사람들은 '완전함', 달리 표현하면 '완벽'과도 가까운 그것을 향해 쉼 없이 달려 나갑니다.
이런 삶의 태도는 여유를 부릴 수 없고 채워야 한다는 강박을 동반하게 됩니다. 늘 긴장이 따라오지요.
반면 '온전함'에는 여유가 있습니다. 다 채워지지 않아도, 조금은 비어있는 상태도로 만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여나 공백을 용인하는 마음 상태라고 할까요. 완전함은 차갑고, 온전함은 따스합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이야기한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소설, 영화 시.. 여러 장르의 수많은 작품들을 소박하지만 세련된 언어로 평론의 감각의 지평을 넓힌 그의 글은 친근하지만 쉽지 않은 언어로 다가옵니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따스히 배어있지만 넘보기 힘든 자신만의 특별한 벽은 하나쯤 세우고 있음을, 그 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찾기 힘든 곳에 신비롭게 가려져 있는 느낌 또한 저는 좋았습니다.
사람이 모든 걸 다 내보일 때 매력은 반감되게 되니까요.
그가 안내한 수많은 작품 중 한 권을 골라 주말을 시작해 볼까요~
흐리지만 여유로운 주말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