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가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살풋한 고향의 품처럼 따뜻함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감정의 만용을 지양하는 절제의 미가 흐르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문득 세상살이에 지치고 기운이 오르지 않는 그런 날은 책장에 꽂혀있는 작가의 글을 슬쩍 꺼내 이리저리 만지며 지난 문장을 되새기곤 합니다. 그렇게 책을 뒤적이며 이냥 저냥 시간을 보내다 보면 허우적대던 일상으로 되돌아갈 힘이 얻어지는 것이 참 신통한 일이지요.
세상을 등지고 가신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애통한 마음은 작가의 남은 글로, 따님 호원숙 작가의 새로운 글로 메워나갈 수 있어 무척 안도합니다.
딸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의 모습은 또 다른 세계입니다.
박완서 작가가 바라보는 세상을 곁에서 바라보며 서술하는 어린 관찰자의 시선도 만날 수 있고, 엄마의 글 속에 담겨진 생활의 일면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즐거움도 지니고 있습니다.
작고 얇은 한 권의 책에 엄마 박완서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기억마저 끌어내 주네요.
식구들과 둥그렇게 앉아 빚어 먹던 송편과 만두,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을 만들어 튀겨내주시면 까르르 거리며 신나 했던 제 유년의 기억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올라옵니다.
책을 읽으며 마음은 이미 부엌에 가 있습니다.
이젠 기운이 없어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엄마 생각에 눈시울이 붉어지다가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이라는 단편에 언급된 남편이자 호 작가의 아버지 모습에서 급기야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7시 30분이면 정확하게 집에 돌아오니 땡서방 이라 불렀다는 그의 아버지, 손에 들린 설탕 발린 도너츠와 고로케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고 작가가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는 글에서 전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아빠가 가신지 4년이 다돼가지만 그리움은 더욱 짙어집니다.
저희 아빠도 땡서방 이었지요. 늘 저녁 먹기 전에 퇴근하셔서 식구들과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었습니다.
아빠가 집는 반찬은 더 맛있어 보여 드시는 순서대로 반찬을 그대로 따라먹다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놓치기도 하고 서둘러 먹다가 체하기도 하곤 했지요. 떠올리면 참 즐거운 유년의 기억입니다.
엄마와 목욕을 마치고 나오면 아빠는 수건을 들고 기다리셨다가 제 머리를 정성껏 말려 주셨습니다.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소중한 기억입니다. 그때의 안온한 느낌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합니다.
감기라도 걸려 며칠 앓고 나면 아빠는 제게 달걀 프라이를 특별히 하나 더 만들어 주셨지요.
몸이 아프면 식구들의 사랑을 오롯이 독차지하니 가끔은 아픈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불고기를 만들어 주시는 날이면 아빠의 볶음밥을 기대할 수 있었고,
아침마다 산에 가실 때 쫄랑쫄랑 따라가다 힘이 들면 등에 기어올라 업혀 가는 호사도 누렸습니다.
늘 큰 산처럼 보였던 아빠가 병상에 누워 계실 때 모습은 한없이 작고 가엾어 보였지요.
병이 길어지니 식구들이 하나 둘 지치고 어쩜 아빠는 외로움과도 싸워야 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곁을 지킨다 해도 내 가족이, 내 생활이 먼저였고, 아빠는 그다음이었으니까요.
왜 더 곁을 잘 지키지 못했을까요..
그때는 그렇게 돌아가신다는 게 세상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짐작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아프셔도 몇 년은 더 곁에 머무르실 거라는 안일한 마음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도 순간이었습니다. 후회는 삶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문득 엄마는 백 번을, 천 번을 다시 태어난다 해도 아빠와 결혼하시겠다고 속삭이듯 말씀하셨지요.
그 말의 여운이 쓸쓸하게 남았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이 제 삶을 지탱해주는 강한 힘이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의 기운을 한없이 쏟아 주셨음을,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되네요.
이 나이에도 부모님의 사랑으로 버텨가니, 한편으론 행운이고 감사라는 생각입니다.
백 번을, 천 번을 다시 태어나도 이 분들의 딸이고 싶습니다.
저의..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입니다.